‘1987’ 30년 전 그날에도 우린 이렇게나 위대했다고 [리뷰]

입력 2017-12-15 00:00
영화 ‘1987’의 극 중 장면. 고(故) 박종철군의 아버지가 아들의 영정을 들고 애통해하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27일 개봉 장준환 감독의 ‘1987’

박종철에서 이한열까지
6월항쟁 과정 사실적 묘사
김윤석·하정우 등 호화 캐스팅
서울시청 앞 100만명 장면 압권

‘모두가 뜨거웠던 그해.’

포스터에 적힌 이 한마디로 영화 ‘1987’(감독 장준환)을 설명할 수 있다. 1987년, 대한민국은 하나의 열망으로 들끓었다. 불의에 저항하는 순수한 양심들이 모여 거대한 흐름을 이루고, 급기야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았다. 30년이 흐른 지금에도 선연하게 기억되는, 바로 그해의 이야기다.

영화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 시작해 그 진실이 세상에 드러나고 6월항쟁으로 폭발하기까지의 과정을 따라간다. 당시 스물두 살이었던 고(故) 박종철 열사가 남영동 대공분실의 차가운 물속에서 사망한 그해 1월 14일부터 온 국민이 한목소리로 독재정권 타도를 외친 6월 10일까지. 그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의지와 선택과 행동이 자리하고 있었다.

경찰조사를 받던 대학생 박종철(여진구)군이 사망하자 경찰은 곧바로 증거 인멸을 시도한다. 대공수사처 박 처장(김윤석)의 지시로 시신을 화장하려 하는데 사망 당일 당직이었던 서울지검 최 검사(하정우)가 이를 거부하고 부검을 밀어붙인다. 경찰은 부랴부랴 취재진을 모아 ‘심장마비로 인한 쇼크사’라는 거짓발표를 한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진실은 그러나 감춰지지 않는다. 도저히 저버릴 수 없는 ‘양심’ 때문이다. 부검의는 감시를 피해 기자(이희준)에게 부검 결과를 몰래 귀띔해주고, 기자는 보도지침을 무시한 채 ‘물고문 도중 질식사’라는 팩트를 보도한다. 사건에 연루된 대공형사(박희순)는 뒤늦게나마 사건의 진상을 이야기하고, 이를 알게 된 교도관 한병용(유해진)은 진실을 수면 위로 끄집어낸다.

영화에 등장하는 유일한 허구의 인물 연희(김태리)는 6월항쟁까지 이야기를 확장해나가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한병용의 조카이자 87학번 신입생인 그는 대학 선배인 고(故) 이한열(강동원) 열사를 만나 민주화운동에 눈을 뜬다. 데모를 ‘남의 일’이라고만 여겼으나 차츰 내면의 갈등을 겪으며 변화해가는 연희의 모습은 일반 시민의 그것과 겹친다.

영화는 격동의 현대사를 다루면서도 결코 담대함을 잃지 않는다. 주저함이나 과장됨 없이 본연의 목적의식에 성실히 도달한다. 빈틈없는 고증을 통해 구현된 그 시절 풍경은 현실감을 더한다. 그 정성스러운 태도가 작품 곳곳에 녹아있다. 무엇보다 억지 신파에 빠지는 것을 철저히 경계했는데, 진정어린 마음이 와 닿는 순간 관객은 절로 눈물을 쏟게 된다.

장준환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1987’은 ‘모두가 주인공인 영화’다. 분량에 관계없이 맡은 바 역할을 완수해낸 배우들의 헌신이 빛난다. 엔딩 크레디트 맨 앞에 등장하는 강동원 여진구를 비롯한 설경구 문성근 김의성 오달수 조우진 고창석 등 빛나는 카메오들이 함께했다. 특히 연세대 신학과를 다니며 이한열 열사와 함께 학생운동을 했던 배우 우현이 치안본부장역을 맡아 눈길을 끈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순간은 엔딩신이다. 100만명이 운집한 서울시청 앞 광장. 사람들은 결연한 목소리로 소리친다. “호헌 철폐! 독재 타도!” 울분과 열망으로 뒤엉킨 광장은 그 자체로 뜨겁게 발산하는데, 그 벅차오르는 광경을 마주하는 순간 온몸이 쩌릿쩌릿해지는 전율을 느끼게 된다.

지난겨울 촛불의 기적을 기억하는 우리에게 ‘1987’은 그저 그런 역사물로 치부되지 못할 것이다. 장 감독은 “최루탄에 맞서 구호를 외치던 1987년과 온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나온 2017년이 미묘하게 연결돼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 국민이 얼마나 위대한가 보여주는 지점이지 않나. 힘들고 절망스러울 때마다 우리 국민은 스스로 나서서 서로에게 힘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27일 개봉. 129분. 15세가.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