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선물이 될 수 있다"… 한국당 요구로 내년 7월 시행
지자체장·지방의회 의원
체육단체장 겸직 금지
국민의당 요구로 개정 합의
기초연금 인상 등도 연기
선거에 유리·불리만 따져
법안 취지·목적 훼손 지적
여야가 법안 처리 과정에서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해 ‘법안 흥정’을 벌이고 있다. 법안이 지방선거 전에 시행될 경우 지역 표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속도 조절에 나선 것이다. 결국 정당이 선거 유불리를 앞세우면서 법안의 본래 취지나 목적이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인 흥정 대상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한국해양진흥공사법이다. 이 법안은 해운기업들에 종합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사를 설립하는 게 골자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하지만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는 지난 1일 법안소위 심사에서 법 시행 시기를 지방선거 이후인 ‘2018년 7월 1일부터’로 수정한 것으로 13일 확인됐다.
지방선거 전 부산에 공사 설립이 추진될 경우 지역 민심이 여권으로 기울 것을 우려한 야당의 요구 때문이었다. 소위 위원들은 지난 1일 법안 심사에 앞서 비공개로 만나 법안 처리를 논의했다. 이 과정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법안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사 설립이) 부산 지역에 ‘선물’이 될 수도 있다”며 “이번에 법안을 통과시키지 말고 지방선거 이후 통과시키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맞서다 법안 처리를 위해 결국 야당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법안 시행 시기는 당초 ‘법 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날부터’였다. 당시 회동에 참가한 한 민주당 의원은 “야당이 지방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법안 시행 시기를 늦춰 달라고 요청했다”며 “어차피 준비하는 데 6개월 정도 시간이 걸려 내년 7월 1일부터 시행해도 큰 문제가 없다고 봤다”고 말했다.
한국당은 상임위에서 법안 처리 연기를 요청했지만 예산 심사 과정에서는 오히려 300억원을 증액시켰다. 부산이 지역구인 한국당 김도읍 의원이 관련 예산 증액을 강하게 요구했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의 체육단체장 겸직을 금지하는 지방자치법 개정안에 합의했다. 국민의당의 요구 때문이었다. 전국의 기초단체장 중 3% 정도만 차지한 국민의당으로서는 현역 지자체장의 영향력을 줄이는 게 지방선거에서 유리한 탓이다.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박홍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의 스마트폰 메신저창에 이런 문구가 적힌 사진이 찍히면서 ‘이면 합의’ 논란까지 제기됐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각각 예산안 처리와 법안 처리를 대가로 거래한 것 아니냐는 얘기다.
국회의 내년도 예산안 심사 과정에선 기초연금 인상 및 아동수당 지급 시기가 내년 9월로 미뤄졌다. 유권자들이 지방선거 전에 복지정책 효과를 체감할 경우 선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야권의 요구 때문이었다. 정부는 각각 내년 4월과 7월부터 시행할 계획이었지만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박상병 인하대 교수는 “여당이 자신들의 성과를 지방선거에서 활용할 게 분명한데 야당 입장에서는 이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을 것”이라며 “후진적인 정치문화로 인해 법안과 정책의 본래 취지와 진정성이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
[단독] 지방선거 표 의식 ‘법안 흥정’… 해양진흥공사 설립도 늦췄다
입력 2017-12-13 18:26 수정 2017-12-13 2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