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품은 아이들 ⑩·끝] 우즈베크서 맞은 백신 부작용… 온몸이 뒤틀려

입력 2017-12-14 00:01
막심 알리에프군이 12일 경기도 부천성모병원 소아 운동치료실에서 어머니 이마리나(고려인 3세)씨의 품에 안겨 미소 짓고 있다. 왼쪽 사진은 막심이 보조기구에 몸을 의지한 채 전기치료를 받고 있는 모습. 밀알복지재단 제공

12일 오후 경기도 부천성모병원 재활의학과 소아 운동치료실. 연갈색 머리에 새하얀 피부를 지닌 막심 알리에프(6·뇌성마비)군은 보조기구를 붙들고 조심스럽게 걸음을 내딛었다.

“막심, 천천히. 잘하고 있어.”

재활치료사의 격려에 자신이 붙은 막심은 환자복이 땀에 흠뻑 젖는 줄도 모른 채 연신 몸을 움직였다. 열 걸음 넘게 발을 떼 기자 앞에 도착한 그의 입에서 놀랍게도 한국말이 쏟아져 나왔다.

“제 이르믄 막심입미다. 항궁말 하 쭐 아라요. 오눌 날씨가 조아요. 일어나. 안자. 쩐쩐이(천천히). 잘하죠?”

우즈베키스탄(우즈베크) 타슈켄트 외곽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막심은 고려인 4세다. 우즈베크인 아버지와 고려인 3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막심은 생후 3개월 만에 뒤집기를 할 정도로 건강했다. 하지만 예방접종을 하러 병원에 다녀온 뒤 막심의 몸은 뒤틀리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아마비를 예방하는 주사였다.

“우즈베크에선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백신이 많아 부작용으로 병을 얻는 아이들도 많죠. 나름 큰 병원에서 접종했던 거라 의심 없이 주사를 맞았는데 그날 이후 아들 오른쪽 다리가 경직되기 시작하더니 온몸에 마비증상이 왔어요.”

어머니 이마리나(33)씨는 병원에서 보상을 받기는커녕 뇌성마비 진단서 한 장과 함께 내쫓기듯 나와야 했다. 이씨는 “병원은 의료사고로 인정하지 않았고 소송할 수 있는 형편도 못 돼 눈물로 나날을 보내야 했다”고 회상했다.

이씨는 아들의 치료를 인터넷에서 찾은 민간요법이나 유튜브에 올라온 마사지법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우즈베크에는 소아 재활치료 전문시설과 전문 의료진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런 차도 없이 아들을 병간호한 지 5년째 되던 날, 이씨는 한국행을 결심했다. 한국에서 치료비를 마련해 러시아에서 막심을 치료할 계획이었다.

“지난해 9월 입국해 서울의 한 모텔에서 먹고 자며 침대 정리, 창고 청소 등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3개월쯤 지났을 때 모텔 사장님 소개로 인천 숭의교회(이선목 목사)를 알게 됐죠. 그게 기적의 시작이었어요.”

숭의교회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차곡차곡 치료비를 모아오던 이씨는 교회를 통해 부천성모병원이 장애아동의 치료를 지원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막심의 치료 국가가 러시아에서 대한민국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지난 9월 1년여 만에 엄마 품에 돌아온 막심은 태어나 처음으로 소아 재활 전문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하루 네 차례 집중적으로 재활·운동치료를 병행한 끝에 막심은 최근 혼자 설 수 있을 정도로 호전을 보였다. 하지만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멀고 험하다. 재활 전문가는 “예후가 좋은 편이긴 하지만 우즈베크에서 잘못된 방식으로 치료해 온 기간이 너무 길어 앞으로 2∼3년은 치료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며 “경우에 따라 보톡스·전기치료, 교정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씨가 1년 동안 모은 치료비와 병원의 지원으로 현재까지 치료비 2900만원은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매달 필요한 치료비만 500여만원. 화장품 공장에서 근무하는 이씨의 월수입 150만원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상황이 막막하지만 엄마와 아들은 병실 침대에 앉아 짙은 갈색 눈을 마주치며 두 손을 모았다.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여기 와서 깨닫게 됐어요. 우즈베크인 신분이었다면 이 땅을 밟기도 힘들었을 테니까요. 아들과 함께 고려인이 아닌 진정한 코리안으로 대한민국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고 싶어요.”

부천=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기적을 품은 아이들’ 9회차 곽현민군 성금 보내주신 분(2017년 11월 15일∼12월 12일/ 단위: 원)

△박인도 50만 △허정숙 심유빈 30만 △김병윤 20만 △유승민 15만 △조동환 이향숙 오아시스교회 조점순 10만 △한승우 소영주 김전곤 조원제 이희광 김진원 조현옥 최창수 황선연 5만 △서영자 유동현 임봉춘 사랑 김덕수 3만 △전종환 2만 △장영선 김희조 김애선 1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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