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꼼해진 후원자들 “내 기부금 잘 쓰이고 있나요?”

입력 2017-12-14 00:00
기부금을 사적 유용한 ‘어금니 아빠’ 이영학씨 사건 등에도 나눔 열기는 식지 않았지만 후원자의 눈매는 매서워졌다. 교계 비영리단체는 기부금 용처 등 주요 정보를 직접 공개해 단체의 신뢰도 높이기에 주력 중이다. 사진은 지난 1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서 어린이들이 구세군 자선냄비에 성금을 넣는 모습. 서영희 기자

“내 후원금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느냐” “요즘 워낙 말이 많아 믿을 수 없다”….

최근 A국제구호단체는 후원자들로부터 이런 내용의 전화를 자주 받는다. 이 단체 마케팅 담당자는 13일 “기부금을 사적 유용한 ‘어금니 아빠’ 이영학씨 사건 발생 직후부터 후원 내역을 묻는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며 “홈페이지에 있는 후원금 사용보고서를 참고해 달라 말씀드리지만, 기부 자체에 회의감을 표하는 이들이 적지 않아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밀알복지재단에도 재단 사업과 지원내역, 나아가 재단의 비전과 정체성까지 전화로 묻는 후원자들이 부쩍 늘었다. 재단 관계자는 “기부 절차나 재정투명성 등 단체 신뢰도를 직접 따져보는 후원자들이 예전보다 많아진 편”이라고 설명했다.

‘기부 성수기’인 연말, 최근 자선단체에 사용처를 꼼꼼히 따져 묻거나 단체 운영에 불신을 토로하는 후원자가 늘고 있다. 기부금 12억원을 빼돌린 ‘어금니 아빠’ 사건과 결손아동 지원단체 새희망씨앗의 기부금 불법 유용으로 자선단체 신뢰도가 낮아진 탓이다.

이 같은 현상은 교계 비영리기구(NPO)에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기부금 용처와 단체 운영을 염려하는 문의가 전년 대비 크게 늘었다.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신규 후원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다 “기아대책은 정말 괜찮은 단체 맞느냐”는 질문을 받은 것. 기아대책 관계자는 “전화로 문의한 분 가운데 실제 후원 중단을 요청한 경우는 거의 없다”며 “이영학씨 사건 등이 모금엔 큰 타격을 주진 않았지만 후원자들에게 심리적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국정농단 사건으로 기업 후원이 대거 줄었던 터라 교계 NPO도 비상이다. A단체는 최근 모든 후원자를 대상으로 ‘우리는 엄격한 감시하에 체계적으로 후원금을 관리하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발송했다. 모금단체로서 기존 후원자 이탈이 신규 후원자 수 감소보다 심각한 문제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아대책은 사업 현장을 후원자에게 공개하고 피드백을 강화했다. 기아대책 관계자는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 등 환경적 요인으로 모금이 감소한 것을 반면교사 삼아 올해는 후원자 피드백을 강화키로 했다”며 “후원자를 대상으로 기관 및 사례 현장을 방문케 하니 최근 사건이 있었음에도 이탈자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투명성 강화 등 체질 개선에 나서 후원자와 적극 소통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D국제구호단체 관계자는 “기부는 사회구성원으로서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며 “단체는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후원금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후원자는 후원금과 사업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엔 후원자를 직접 국내외 사업장에 보내 전달자로 참여케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이런 경험으로 상호 간 신뢰를 탄탄하게 쌓는다면 향후 어떤 사건이 생긴다 해도 ‘기부 포비아(공포증)’에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양민경 이사야 최기영 김동우 기자 grieg@kmib.co.kr, 사진=서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