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의 씨앗이 자라 삶을 성찰하다

입력 2017-12-13 22:30
“시를 쓰는 것은 인생을 쓰는 일이다.”

올해 등단 30주년을 맞은 장석남(52·사진) 시인은 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60여편이 수록된 여덟 번째 시집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창비)를 낸 시인을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시인은 “작은 세월은 아닌데 더 깊어지지 못하고 더 멀리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든다”고 했다. 1987년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는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등을 내며 ‘신서정파’를 대표해왔다.

‘끓인 밥을/ 창가 식탁에 펴다놓고/ 커튼을 내리고/ 달그락거리니/ 침침해진 벽/ 문득 다가서며/ 밥 먹는가,/ 앉아 쉬던 기러기들 쫓는다// 오는 봄/ 꽃 밟을 일을 근심한다/ 발이 땅에 닿아야만 하니까’(‘입춘 부근’ 전문) 이번 시집에도 애잔하면서도 온기 있는 감수성을 담은 그만의 시가 많다.

인천 덕적도의 외롭고 쓸쓸하던 유년기가 그의 시를 있게 한 토양이라고 한다. “뭍으로 나간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보낸 시간이 많았다. 귓가에 파도 소리가 계속 쫓아왔다. 아마 어머니 품속에 잠들었더라면 그 파도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자연과 가까워졌고 이따금 어머니를 떠올리며 슬퍼했을 것이다.

‘국경처럼 섰는 소년이여/ 아직 솥을 닫고 그 자리에 섰는 소년이여/ 벽 안의 엄마를 공손히 바라보던 허기여// 그립고 그렇지 않은 소년이여/ 팔을 들어 두 눈을 훔치라’(‘녹슨 솥 곁에서’ 중) 시인은 “그 시를 쓰고 많이 울었다. 시를 쓰면서 나의 내상을 바라보고 그런 것을 치유하는 것 같다”며 조용히 미소를 띠었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근원적인 것을 노래하며 깊이와 원숙미를 보여준다. 여러 시에서 “내세의 이야기를 슬어놓은 듯/ 흰 그릇에 그득하니 물 떠놓고/ 떠나온 그곳”(‘고대에서’ 중)으로 시선을 돌려 자신뿐만 아니라 인류의 과거를 돌아본다. 그는 “노안(老眼)이란 게 참 재미있다. 노안이 오니까 멀리 보게 되고 개인이나 공동체에서나 더 근본적인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안팎으로 문은/ 사람과 사물을 가리지 않고/ 달과 바람을 가리지 않고/ …/ 어둠과 빛을/ 놀람 없이 들이고 보낸다’(‘문을 내려놓다’ 중)

시인은 이 시의 ‘문’처럼 무엇이나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는 데서 생기는 조화로움에 대해 생각 중인 듯하다. 좋은 시는 질문을 주는 시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의 시는 좋은 시일테다. ‘우리 삶의 조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남기므로.

글=강주화 기자, 사진=김지훈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