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순환출자 구조 개선·적폐 청산… ‘두 토끼 잡기’ 첫 타깃

입력 2017-12-13 05:00



재심의 배경과 향후 영향

김상조 위원장 전격 결정
개정안 중 1, 2안 채택 땐
순환출자 가이드라인 강화
현대차·롯데 등 메가톤급 파장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따른 순환출자 해소 건을 2년이 지나 다시 들여다보는 데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순환출자라는 후진적 방식을 이용해 작은 지분으로 거대그룹을 장악하는 재벌 오너 일가의 지배구조를 개혁하려는 것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됐던 공정위 스스로의 적폐를 청산하려는 의도도 있다. 동시에 공정위가 이번에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삼성뿐 아니라 현대차, 롯데 등 순환출자 고리를 갖고 있는 다른 그룹에 상당한 파장을 미친다.

공정위가 전격적으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재심의에 착수한 이면에는 김상조(사진) 공정거래위원장의 지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만 해도 김 위원장은 재심의에 유보적 입장이었다. 여야 의원들은 2015년 공정위 결정을 놓고 절차의 잘못, 내용의 문제점을 잇따라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공정위 판단이 외부의 압력에 의해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했다”고 인정하면서도 “가이드라인 변경은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답했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외부전문가 자문 등을 거치면서 충분하게 검토한 뒤 ‘2015년의 잘못된 결정’을 되돌릴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재심의에서 공정위는 2015년과 다르게 절차나 내용에서 빈틈을 보이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우선 ‘합병 관련 신규 순환출자 금지 법집행 가이드라인’을 법적 구속력이 있는 규정으로 바꿔 행정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12일 “2015년 공정위의 삼성물산 500만주 처분 결정은 유권해석일 뿐 매각 명령은 아니었다”면서 “삼성물산 주식 추가 매각명령을 내리기 위한 탄탄한 법적 근거를 만드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공정위 기업집단국이 전원위원회에 제시한 ‘순환출자 가이드라인 개정안’ 3가지는 삼성물산 주식 추가 매각 명령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공정위는 2015년에도 가이드라인 틀에 맞춰 삼성물산 매각 주식 수를 산출했었다. 이번에도 바뀌는 가이드라인의 내용과 형식이 남은 순환출자 고리에 적용되는 것이다.

또 김 위원장을 포함한 전원위원회 위원 9명 가운데 과반 이상의 찬성으로 결정을 내릴 방침이다. 2015년에는 정재찬 당시 공정위원장이 전원위 의견을 무시하고 삼성물산 매각 주식 수를 900만주에서 500만주로 낮췄었다. 이번 재심의에서 9명 중 5명이 삼성물산 500만주 추가 매각 명령, 400만주 추가 매각 명령으로 이어지는 1안과 2안이 아닌 3안(원안 유지)를 선택하면 안건은 부결된다.

전원위가 1안과 2안으로 결정해 순환출자 가이드라인을 강화하면 다른 재벌 그룹도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가게 된다. 김 위원장은 국감에서 “순환출자 가이드라인 변경은 이미 조치가 이루어진 기업뿐 아니라 지금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려는 여러 그룹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었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이미 조치가 이뤄진 기업’은 삼성과 현대차,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려는 그룹’은 롯데로 보인다. 2015년 7월에 이뤄진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 합병 건에도 소급 적용된다. 당시 공정위는 현대차와 기아차가 보유 중인 합병법인 현대제철 주식 880만주를 매각하라고 결정했었다.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 지배구조에 일대 지각변동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