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박근혜 포괄적 뇌물죄 근거 강화, 삼성은 ‘신뢰보호 원칙’ 내세울 듯
입력 2017-12-13 05:00
공정위, 추가 처분 결정 땐 ‘靑 외압’ 자인하는 셈
공정거래위원회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재심의에서 내려질 결론은 현재 진행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항소심 재판의 주요 쟁점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1심 재판부는 삼성물산 주식처분 규모를 500만주로 결정하는 과정에 청와대 외압이 있었다고 봤다. 이를 이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 사이의 포괄적 뇌물죄 근거로 삼았다. 이에 따라 공정위가 당시 결정을 부당했다고 판단하면 항소심에서 특검 논리에 한층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지난 8월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는 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2015년 7∼12월 삼성물산 주식처분 규모를 둘러싸고 진행된 공정위 논의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애초 공정위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발생한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기 위해 삼성 계열사가 처분해야 할 삼성물산 주식을 1000만주로 제시했었다. 하지만 삼성 측에서 이의를 제기했고,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등 청와대의 압력이 들어왔다. 공정위는 처분 주식을 500만주로 줄였다.
이런 공정위 결정 과정은 항소심에서 특검 측과 이 부회장 측이 가장 첨예하게 맞붙는 지점이다. 앞서 1심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 승계 작업 전반을 지원했기 때문에 포괄적 뇌물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삼성물산 합병→순환출자 고리 해소→처분 주식 최소화’로 이어지는 과정을 이 부회장의 승계 작업 중 하나로 본 것이다.
공정위가 재심의에서 ‘삼성물산 주식 추가 처분’ 결정을 내리면 2015년의 결정은 청와대 외압으로 왜곡됐었다는 걸 자인하는 셈이 된다. 박 전 대통령이 삼성의 승계 작업을 위법하게 지원했다는 포괄적 뇌물죄의 근거가 한층 강화되는 것이다. 때문에 특검이 공정위 재심의 결정을 항소심 재판에 추가 증거로 제출할 가능성도 높다. 마찬가지로 박 전 대통령의 1심 재판에서도 특검 측이 공정위 재심의 결정을 강화된 논리로 제시할 것으로 관측된다. 검찰이 공정위 재심의 결정을 계기로 추가 수사에 착수할 수도 있다.
반면 삼성 측은 공정위가 삼성물산 주식 추가 처분을 결정하면 즉각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2015년 공정위 유권해석에 따라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 500만주를 처분했는데 이를 임의로 뒤집을 수 없다는 반박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법조계 관계자는 12일 “삼성과 이 부회장 입장에서 공정위 재심의 결정이 신뢰보호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가 재심의에서 추가 처분 결정을 내리고, 삼성 측이 법적 다툼으로 대응하면 이 부회장의 형사재판과 공정위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이 동시에 진행될 공산이 크다. 공정위는 2015년 논의 때 있었던 외압이나 불법성을 강조하고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두 사건 진행 경과가 증거로 제출돼 서로서로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