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총리 “종교인 과세안 보완” 지시 “합의 어렵게 도출했는데…” 난감한 교계

입력 2017-12-13 00:02
주요 교단 총무(사무총장)들이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고신총회 회관에서 긴급 모임을 갖고 이낙연 국무총리의 종교인 과세 발언과 관련,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까지 입법예고된 종교인 과세 시행을 코앞에 두고 터져 나온 이낙연 국무총리의 ‘돌발 발언’에 교계가 일제히 발끈하고 나섰다.

이 총리는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종교인 과세 제도와 관련, 기획재정부에 보완할 것을 지시했다. 이 총리는 “언론과 시민사회 등은 종교인 소득신고 범위나 종교단체 세무조사 배제원칙 등이 과세 형평에 어긋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지적도 있다”면서 “종교계 의견을 존중하되 국민 일반의 눈높이도 감안하면서 조세행정의 형평성과 투명성을 더 고려해 최소한의 보완을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교계는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종교계와 과세 당국, 국회가 우여곡절을 겪으며 논의하고 합의한 내용을 깡그리 무시하는 처사라는 것이다. 특히 제도 시행 시점이 20일도 안 남은 상황에서 나온 총리 발언은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단번에 허물어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교회 주요 연합기관들을 대표해 종교인 과세 의견 창구 기능을 맡은 ‘한국 교회와 종교간 협력을 위한 특별위원회’(특별위)는 이날 서울 모처에서 긴급회의를 개최했다. 13일 오전에는 ‘한국교회 긴급 연석회의’를 개최한다.

권태진 특별위 대표위원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함께 연구해 합의한 안을 이제 와서 재검토한다면 교계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는 종교계에 대한 박해, 탄압이고 음모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 대선 캠프는 과세 유예를 약속했다”며 “그럼에도 내년에 시행될 수 있도록 종교계가 합의해 양보했는데 이를 특혜라며 재검토하겠다는 건 종교계를 불신한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엄기호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은 “국무총리일수록 발언을 신중히 해야 논쟁이 봉합될 수 있다”며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을 강행하려 한다면 큰 소요가 일어날 수 있기에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그는 “종교단체 세무조사 배제 원칙을 시행령에서 부정하는 건 ‘종교 과세’가 아닌 종교인 소득 과세라는 시행령 상위법(소득세법)의 취지와 정교분리 원칙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별위 관계자는 “과세 시행 준비로 바쁜 상황에서 정부에 울며 겨자 먹기로 협조한 것을 두고 ‘종교계가 잠잠해졌다’고 일각에서 표현하고 있다”며 “이 총리의 발언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동석 한국기독교연합 대표회장은 “기재부 매뉴얼이 준비되지 않는 등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논의를 재검토한다니 감당이 안 된다”며 “신의를 저버리는 정부 행동에 교계가 하나 돼 대응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유중현 한국장로교총연합회 대표회장도 “이 총리의 발언은 6만여 교회를 우롱하고 모욕하는 것”이라며 “한국 교회가 하나로 뭉쳐 강력하고 단호한 결단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여 주요 교단 총무(사무총장)들도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고신총회 회관에 모여 긴급대응 방안을 모색했다. 한 참석자는 “합의안을 번복한다고 하면 우린 선택의 여지없이 이의를 제기하고 과세에 대해 교단 전체적으로 거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교계에서는 이 총리가 언급한 ‘최소한의 보완’에 대한 해석도 분분하다. 세부사안에 대한 내용이 추가로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시행령 입법예고 기한인 14일까지 접수된 이의제기 사항을 검토해 반영할 것은 반영할 것”이라며 “총리 발언 때문에 뭘 고치고 그런 건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세 매뉴얼은 입법예고 기간이 끝나고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후에 배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김동우 이현우 기자 love@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그래픽=이영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