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곤소곤 자코메티 이야기’] 천재의 고달픈 동반자… 위대함을 일깨운 평범함

입력 2017-12-12 22:47
국민일보 창간 30주년 기념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 특별전'은 자코메티의 아내 아네트에게서 기증받은 작품으로 꾸려진 알베르토 자코메티 재단과 공동으로 마련했다. 사진은 아내를 모델로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자코메티. 알베르토 자코메티 재단 제공
아네트 청동 조각상(1954). 알베르토 자코메티 재단 제공
기모노를 입은 아네트. 알베르토 자코메티 재단 제공
“이런 빌어먹을! 당신이 포즈를 망쳤어요. 제발 사과처럼 앉아 있으라고 또 얘기해야겠어요? 사과가 어디 움직이던가요.”

프랑스 후기 인상주의 화가 폴 세잔이 모델 역할을 해준 아내에게 버럭 화내며 내뱉은 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작가의 아내는 모델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러나 대개 영감을 주는 뮤즈라기보다는 우직한 조수이자 동반자였다.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의 아내 아네트(1923∼1993)가 그랬다. 결혼 초기부터 수없이 모델이 돼주었다. 작가의 미국인 친구 제임스 로드가 꼼짝 않고 있어야 하는 모델의 고역을 토로하자 아네트는 이렇게 위로했다. “나에 비하면 아무렇지도 않을 거예요. 그렇지만 이젠 더 이상 전처럼 모델 역할을 하고 싶지 않아요. 인생이 통째로 모델이 되는데 먹혀버리고 말테니까요.”

국민일보가 창간 30주년을 기념해 오는 21일부터 내년 4월 15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 특별전’을 갖는다. 전시의 감상 포인트 중 하나는 아내 아네트를 모델로 한 작품을 통해 자코메티의 작품세계를 고찰하는 것이다. 조각 회화 판화 사진 총 13점이 건너왔다.

자코메티의 아내로 산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1943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났다. 작가가 초현실주의와 결별하고 프랑스 파리를 떠나 고국에서 은거하던 시절이다. 그녀의 검은 눈에 반한 자코메티는 동거를 시작했고 1949년 결혼했다. 자코메티가 48세, 아네트가 26세였다. 개방적이고 솔직한 그녀를 자코메티는 ‘나의 조조트’(귀엽고 어리숙한 아가씨라는 뜻)라고 불렀다. 자코메티는 남들 앞에서 아내를 무안 주기도 하고, 다른 여성에 공개적으로 애정표현을 하기도 했다. 자코메티가 아이를 원하지 않으면서 두 사람은 사이가 소원해졌다.

‘졸혼’한 부부처럼 살아온 두 사람. 자코메티는 상업적 성공을 거둔 뒤에도 따뜻한 물이 나오는 안락한 가정을 꿈꾸는 아내의 평범한 소원조차 외면했다. 임종을 앞두고는 “(정부(情婦)인) 캐롤린과 둘만 있고 싶으니 병실을 나가달라”고 말할 정도였다.

아네트는 자코메티의 무명시절에 생계를 책임졌던 사람이다. 22살이나 어렸지만 그가 작업이 안 돼 고통스러워할 때는 “오늘은 그만. 내일 해요”라며 누나처럼 위로했다. 자코메티의 예술 인생에서 남동생 디에고만큼 중요한 조수였다. 그래서인가. 자코메티는 거의 전 재산을 아내에게 상속했다. 어마어마한 부자가 됐지만 아네트는 소박한 삶을 이어갈 뿐이었다. 남편 사후 27년을 더 살면서 재단을 설립하는데 힘썼다.

국민일보가 마련한 한국 특별전은 아네트가 기증한 작품들로 꾸려진 알베르토 자코메티 재단과 공동주최한 것이다. 컬렉터이자 화상이 설립한 매그재단이 주최했던 일본 도쿄 국립신미술관 전시와 차원이 다르다. 까뜨린느 그레니에 알베르토 자코메티 재단 대표는 “우리는 조각 300여점, 회화 90여점 등 최대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고, 무엇보다 조각품의 절반 이상이 석고 원본이라 다른 재단과 차별화된다”고 밝혔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