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지방정치의 최대 이슈는 ‘지방분권’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연방제에 버금가는 강력한 지방분권”을 언급하며 내년 개헌 과제에 지방분권을 포함시킨 것을 계기로 이번에야말로 지방분권을 이뤄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10월 ‘지방분권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논의는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지방분권은 20년 넘은 한국 지방자치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기회로 여겨진다. 문 대통령은 지방분권을 “국민의 명령” “시대정신”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동력”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현재의 지방분권 개헌 논의가 지방자치단체(지방정부) 권한 강화에만 치우쳐 지방정치의 또 다른 축인 지방의회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시의회는 지난달 정부의 지방분권 로드맵이 지방의회를 무시하고 있다며 전면 수정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두 차례 발표했다. 서울시의회 지방분권TF 단장으로 지방의회 강화론을 주도하고 있는 신원철(53) 시의원을 12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부가 추진하는 지방분권의 방향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했는데.
“현재의 지방분권 논의에서 지방의회 문제가 누락되고 있다. 행안부가 발표한 자치분권 5대 로드맵을 보면 지방의회의 역량이나 전문성을 강화하는 내용이 거의 없다. 지방정부를 견제, 감시하는 지방의회를 이렇게 허약한 상태로 내버려 둔 채 지방정부의 권한만 강화한다면 지방정부와 단체장의 권력 오·남용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지방분권이라면 흔히 지방정부 강화로 이해돼 왔다. 지방의회 강화가 지방분권과 어떻게 연관되는 것인가.
“지방정부의 권한이 강화된다면 이를 감시하고 견제할 지방의회의 권한도 강화돼야 균형이 이뤄진다. 현재도 ‘강(强) 집행부 약(弱) 의회’ 구조다. 여기서 집행부(시청)만 더 강해진다면 지방의회를 통한 견제와 균형이 더 어려워지지 않겠는가? 지방의회는 또 주민 생활과 밀접한 조례들을 만든다. 좋은 조례를 만들기 위해서도 지방의회의 역량과 전문성이 강화돼야 한다.”
-현재로서는 지방의회가 제대로 일하기 어렵다는 것인가?
“지방의회가 부활한지 26년이 지났다. 몸은 커졌는데 이전의 옷을 계속 입고 있다. 서울은 인구 1000만 도시이고 세계적인 메트로폴리탄이다. 예산만 해도 44조원에 육박한다. 게다가 서울시민들의 요구 수준은 무척 높다. 이걸 시의원이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벅차다. 임계점에 왔다는 생각이 든다.”
-지방의회 강화를 위해 시의원 1명마다 정책보좌인력 1명을 둘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들어가는 예산은 어느 정도인가?
“시의원에게 정책보좌관이 꼭 필요하다. 국회의원은 9명이나 보좌진을 두고 일한다. 서울시의원은 혼자서 일한다. 이 문제를 더는 미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현재 서울시의원은 106명이다. 이들에게 정책보좌관을 1명씩 붙여준다면 연간 36억∼40억원이 들어간다. 그리 큰 예산이 드는 건 아니다. 시의원 역량이 강화돼 예산심사에서 새는 돈만 막아도 그 이상의 효과가 있다고 본다. 또 좋은 조례 몇 개만 만들어도 그 값어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시의회에는 사무처 직원들이 있다. 이 사무처 직원들은 모두 서울시 공무원으로 서울시장이 인사를 한다. 사무처 인사권을 시의회가 가져야 한다는 요구도 하고 있는데.
“누가 보더라도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견제와 균형이 가능하겠나? 행안부 로드맵에 의장의 사무직원 인사권 확대가 있다. 그런데 그건 확대할 게 아니라 독립해야 할 문제다. 정부가 지방의회에 대해서는 이렇게 미온적이다.”
-사무처 인사권이 독립되지 않아서 벌어지는 문제들이 있다면.
“공무원들은 승진에 제일 예민하다. 그러면 누구 눈치를 보겠나? 서울시장이 인사권자이고 곧 다시 서울시로 돌아가야 하는데 의원들 얘기가 먹히겠나? 특히 서울시장과 서울시의회가 서로 다른 당으로 구성될 경우, 사무처 직원들과 의원들 관계는 복잡해진다. 2010년 서울시의회가 그랬다. 시청은 오세훈 시장, 시의회는 민주당 의원 과반이었다. 당시 시의원들은 사무처 직원들에게 함부로 얘기도 못 했다. 시청으로 얘기가 다 보고될까봐. 이런 구조에서 시의회가 제대로 정책지원을 받을 수 있겠나?”
-지방의회의 역할이나 존재 의미에 대해서 여전히 비관론이 있는 것 같다. 지방의회가 실제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실감하지 못하겠다는 주민들도 많다.
“무상급식 사례를 들고 싶다. 서울시의회가 무상급식 싸움을 주도했고, 무상급식은 이후 한국사회에서 보편적 복지를 확대하는 기폭제가 됐다.”
-서울시의회가 무상급식을 실현시켰다는 것인가?
“그렇게 말할 수 있다. 2010년 서울시의회는 친환경 무상급식 조례를 놓고 당시 오 시장과 치열하게 부딪쳤다. 오 시장은 무상급식 조례에 사인하길 거부하고 6개월간 시의회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주민투표라는 승부수를 띄웠다. 서울시의회는 오 시장의 선별적 복지를 끝까지 거부하고 무상급식을 밀어붙이며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냈다. 박원순 시장이 당선된 후 1호로 사인한 게 바로 무상급식 조례였다.”
-지방의회 강화를 위해 서울시의회 주도로 ‘지방의회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현행 법령에 따르면 지방자치제도는 지방자치단체장 중심 체제다. 지방의회는 지방정부의 부속기관으로 귀속돼 있다. 독립기관으로서의 법적 규정이 미비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독립기관으로서의 법적 위상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지방의회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지방의회의 역량과 전문성이 강화되려면 법과 제도로 뒷받침이 돼야 하는데, 지방의회법이 중요한 틀이 되리라고 기대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들어있나?
“지방자치법 제5장의 지방의회에 관한 규정과 서울시의회기본조례, 회의규칙 등을 묶어서 법안을 만들었다. 여기에는 지방의회 강화에 꼭 필요한 자치입법권, 정책지원 전문인력 확보, 지방의회 인사권 독립, 자치조직권 강화 등을 포함시켰다. 마침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굉장히 좋은 제안인 것 같다면서 적극적으로 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글=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
[지방의회 빼놓고 지방분권 가능한가? <1>] “지방의회 권한 강화돼야 지방정부 권력 견제”
입력 2017-12-12 20:12 수정 2017-12-12 2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