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살인죄 90%·성범죄 86.7% 양형기준 따랐다

입력 2017-12-12 05:01

양형위 출범 10년 심포지엄… 성과·과제는

국민참여재판 유죄 판결 중
성범죄·살인죄 배심원 형량
92.1·86.3% 양형기준 이하
법정 공방 지켜본 국민들
형량 낮춰야 한다고 판단


피고인들은 과연 적절한 양형(量刑)을 받고 있을까. 사법부의 형량은 얼마나 공정하고 평등하게 결정될까. 대법원은 이런 의구심을 해소하고 국민의 상식과 법 감정을 반영하기 위해 2007년부터 양형위원회를 설치해 형사범죄의 적절한 형량을 정한 양형기준을 운용해 왔다.

양형위는 활동 10주년을 맞아 11일 오후 2시 대법원에서 그동안의 성과와 주요과제를 돌아보는 심포지엄을 열었다. 참석한 판·검사와 법학 교수, 시민단체 관계자 등은 “재판에 양형기준이 지켜지는 비율이 90% 안팎”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양형기준을 정함에 있어 피해자 입장이 고려되지 않는 점과 국민 의견이 반영될 창구가 부족한 부분 등은 개선점으로 꼽았다.

2007년 1기 양형위원회에서 활동한 손철우 서울고법 판사는 “살인 뇌물 성범죄 등을 시작으로 10년간 총 38개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이 설정됐다”고 했다. 검사가 기소해 정식재판이 열리는 사건 중 약 90.7%에 양형기준이 있는 셈이다.

손 판사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5년간 재판에서 양형기준이 지켜진 비율은 살인죄 90.0%, 뇌물범죄 79.0%, 성범죄 86.7% 등이었다. 평균 89.7% 수준이다. 다만 벌금형 등 양형기준 비적용 사건이 많은 식품·보건, 지식재산권, 유기·학대 범죄 등에서는 30% 미만으로 나타났다. 이장희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은 “뇌물 등 일부 화이트칼라 범죄에선 준수율이 70% 내외”라며 “피고인 입장에선 유사 범죄의 선고형이 다를 경우 전관예우를 거론하며 사법부를 불신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양형기준 논쟁의 핵심은 ‘국민의 법 감정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손 판사는 “2011∼2015년 국민참여재판에서 유죄 판결이 나온 사건 중 배심원이 양형기준에 맞춰 형량 의견을 낸 비율이 평균 78.7% 수준이었다”고 했다. 특히 성범죄, 살인죄 등은 양형 기준보다 낮은 의견(하한 이탈)을 내는 비율이 각각 92.1%와 86.3%로 나타났다.

손 판사는 “국민이 실제 재판에서 검사와 변호인 측 공방을 지켜볼 경우 대다수가 양형기준보다 더 형을 낮춰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형량이 국민의 법 감정과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는 적절치 못하다는 것이다.

최이문 경찰대 교수는 “양형기준을 국민에게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최 교수는 “형량에 대한 대중의 분노와 실망은 오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며 “강남역 살인사건이나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 등에서 정신질환자나 소년범이 형을 감경 받은 이유 등을 알리고 이해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양형기준 결정에 피해자의 관점이 반영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최 교수는 “영국이나 호주 등에선 피해자 동의하에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진정한 반성과 사과를 하는 회복적 사법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며 “양형뿐 아니라 피해자의 회복을 위해 필요한 부분도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 참여 확대 필요성도 거론됐다. 박근용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양형위원회의 의견 요청에 응답하는 기관은 대법원이나 법무부, 대한변호사협회 등을 제외하면 두세곳에 불과한 실정”이라며 “법률 분야가 전문적이라 시민이나 사회단체가 의견을 제시하기 쉽지 않다면 이들에게 좀 더 쉽게 설명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