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주저하다가 메일을 드립니다. 과연 목사가 받는 사례비가 세금을 낼 만한 소득인가요. 성경에 보면 언약 백성이 봉헌한 헌금은 사람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 드린 헌금이고 그중 얼마를 교회가 목사 사례비로 책정해서 받는 것인데 성경 원리대로라면 어떻게 하나님의 것인 목사 사례비를 세금으로 바칠 수 있단 말입니까. 목사가 무슨 사업을 하는 것인가요.”
얼마 전 한 목회자로부터 이런 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 같은 목회자로서 이분의 의견을 어느 면에선 공감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기독교 국가가 아니고 다종교 국가이기 때문에 종교인 과세 입법이 되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법을 지킬 수밖에 없다. 사회 전체에 불어닥치는 조세평등 원칙이란 흐름을 어찌 거부할 수 있겠는가.
신학생 시절 시골 벽촌에서 교회를 개척할 때 ‘부락자치세’ 문제로 갈등한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부락에 기부금은 낼 수 있을지언정 자치세는 낼 수 없다”면서 끝까지 버텼다. 그래서 마을 이장과 반장한테 “전도사는 부락 주민이 아니냐”는 공격을 받았다. 지금에 와서는 그때 차라리 자치세를 내 버릴 걸 하는 생각을 한다. 공연한 자존심을 지키느라 더 많은 핍박을 받았기 때문이다.
당초 한국교회는 “우리가 자발적 납부를 할 테니 입법을 좀 연기하거나 숙고해 달라”고 한목소리를 내야 했다. 그러나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2∼3년 전 한국교회는 이 일에 관심도 없었고 타 종교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정훈 울산대 교수의 양심고백을 통해 이 사안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뒤늦게 깨닫게 됐지만 말이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먼저 종교단체의 장부 조사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노력했다. 종교란 수익단체가 아닌 비영리단체이기 때문이다. 종교단체 장부를 조사하는 것은 공산국가에서나 있는 일이다. 또 사회적 순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종교활동을 제한하고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다행히 정부가 종교인 과세의 법 원칙을 이해하고 그 정신을 살려 구분 기장으로 결정하기는 했다.
그다음으로 종교활동비를 비과세하는 것이었다. 종교활동비가 종교인 개인 수입이라면 당연히 과세 대상이 돼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종교활동을 위한 일종의 사역비요, 선교비다. 더구나 국회는 저소득층 목회자들에게 근로장려세제 혜택까지 받도록 시행안을 통과시켜 줬다.
수정 시행안이 나오자 비판과 반발도 많았다. 종교인이 아닌 입장이나 한쪽 시각에서만 보면 정부가 종교인들의 편을, 특별히 교회 편을 많이 들어줬다고 오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 나온 정부 시행안의 허점이나 독소적 요소를 알면 그런 오해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종교활동비를 탈루의 지름길로 염려하는 건 일부 목회자의 일탈을 교회와 목회자 전체 문제로 보편화한 것이다. 또한 대부분 중대형 교회에 여과장치가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적은 세금을 걷어서 저소득층 목회자들에게 근로장려세제 혜택을 주는 것이 달갑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저소득층 개척교회 목회자도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가.
나는 정부 쪽에 종교인 과세의 법과 원칙을 설득했다. 동시에 한쪽 시각에서 편견을 갖고 공격하는 사람들이나 기자들과 통화하며 설득하는 이중고를 떠안았다. 그러면서 이메일을 보내온 부류의 사람들도 설득해야 했다.
한국교회 안에는 자발적 납부를 주장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입법이 된 후에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때늦은 각성에 불과했다. 현실적인 대안은 종교소득 과세가 아닌, 종교인 과세 원칙과 법정신을 살리는 데 역점을 두는 것이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시험대에 올랐다. 목회자가 앞장서서 종교인에게 부과되는 세금을 더 잘 납부하자. 그러면서 불만족스럽고 미비한 부분을 스스로 보완하고 개정해 나가자. 그리고 차제에 교회 재정의 투명성을 강화해 나가면서 행여 일부 언론이 우려하는 일은 모양이라도 나타내지 말자.
소강석(새에덴교회 목사)
[시온의 소리] 종교인 과세, 시험대에 오르다
입력 2017-12-12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