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플러그 꽂으면 주님은 역사하십니다”

입력 2017-12-11 00:00 수정 2017-12-11 14:24
오은주 선교사가 지난 6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가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필리핀 현지 사역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현가 인턴기자

23년간 필리핀 오지에서 빈민선교를 한 오은주(65·여) 선교사는 1999년 뎅기열로 아들을 잃던 그날을 잊지 못한다. 당시 아들 나이 15세. 아들은 13세 때 꿈에서 본 천국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말하곤 했다. 아들에게 천국은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운 곳’이고, 세상에서 불쌍한 이들은 ‘예수 안 믿어 지옥 가는 사람’이었다.

온 세계 구원을 위해 ‘우주선교사’를 꿈꿨던 아들은 뇌사판정 사흘 뒤 천국에 갔다. 오 선교사 가족이 필리핀에 온 지 5년 만이었다. 이 일로 남편은 우울증을 앓고 한국에 돌아갔지만 오 선교사는 남았다.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오 선교사는 “나는 천국을 전하는 선교사다. 아들 먼저 천국 갔다고 생각하고, 나는 무조건 기뻐하기로 작정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지난 4일 서울 강남구의 한 호텔에서 열린 ‘제12회 아름다운 이화인상’ 수상을 위해 일시 방한했다.

1994년부터 필리핀 사역을 펼쳐온 오 선교사는 필리핀 산악 오지 라구나 마비탁 마을과 쓰레기 하치장에 있는 스모키 마운틴 마을, 태풍 수재민이 모여 사는 블라칸 타워빌에서 사역했다. 현재 블라칸 타워빌을 포함, 인근 지역에 리조이스선교교회 등 교회 5곳을 개척해 사역 중이다. 그는 따로 거처를 두지 않고 이들 교회를 돌며 주중과 주말 사역을 소화한다.

경제적으로 낙후된 데다 교육 수준이 낮고 몸에 문신한 이들이 대부분인 사역지에서 활동하면서도 그는 단 한번도 험한 일을 당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지난 94년 필리핀 마닐라의 아시아신학대학원(ATS) 신학생 시절부터 기타와 라디오를 둘러메고 오지마을을 찾아다니며 예배와 성경공부를 인도했다. 주민과 가까워지자 가난으로 신음하는 이들의 아픔이 오 선교사 눈에 들어왔다. 오갈 데 없는 빈민에게 영적 성장뿐 아니라 자립을 위해 그가 도입한 게 ‘생계유지 프로그램’이다.

99년 당시 박사과정 중이던 그는 학교에서 알게 된 싱가포르 의사가 만든 비정부기구(NGO)와 손잡고 말린 꽃으로 달력과 카드를 만드는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40가정이 이 사업으로 생계를 잇고 있다. 2년 전부터는 협동조합 방식으로 빵공장을 운영하는데 조만간 수익이 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음세대 육성과 현지인 신학지도자 양성에도 주력하고 있다. 각 교회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악기를 가르치고 청소년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 5년 전부터는 목회자가 꿈인 이들에게 현지 신학교와 연계해 비디오 강의를 제공 중이다. 현재 9명 중 5명이 졸업했다.

아들의 죽음 이후 매 순간 기뻐하기로 작정한 그지만 아픔도 많았다.

본인도 2009년 갑상선암으로 투병했고, 이전엔 자궁근종과 노인성 퇴행성 류머티즘 관절염을 앓았다. 하지만 모두 기도 중 치료받는 기적을 경험했다. 이 때문에 그는 선교지에서 “믿음의 플러그만 꽂으면 주님은 역사하신다”고 자신 있게 설교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수상자로 선정된 뒤 “땅에서 상 받고 정작 하나님께 못 받을까 떨렸다”던 그는 “끝까지 주님 앞에서 정결한 삶을 사는 선교사로 살고 싶다”고 했다. 이어 “저는 누구보다 이름 없이 시작한 선교사”라며 “앞으로도 하나님이 주신 만큼 순종하며 정결한 마음으로 사역하겠다”는 포부를 남겼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