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 드러낸 공공기관 채용비리

입력 2017-12-08 18:53
김용진 기획재정부 2차관과 국민권익위원회, 경찰청 등 관계자들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공공기관 채용비리 특별점검 중간결과 및 향후 계획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기재부, 275곳 중간조사 결과 발표

면접위원도 아닌 기관장이 배석해 지원사격
특정인 합격 때까지 서류합격자 수 늘리기도

2234건 적발… “피해자 구제안 심층 검토”


숱한 의혹을 받아왔던 공공기관 채용비리가 실체를 드러냈다. 누군가의 기회를 뺏고 특정인 밀어주기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드는 일이 공공기관에서 버젓이 벌어졌다. 기관장이 지인 자녀의 이력서를 꽂아 넣는가 하면, 특정인이 합격할 때까지 서류전형 합격자 수를 늘렸다. 원칙과 규정은 수시로 짓밟혔다.

2011년 A기관의 기관장은 지인 자녀의 이력서를 인사 담당자에게 직접 건네면서 채용을 지시했다. 이력서의 인물은 기관장의 말 한마디에 계약직으로 특혜 채용됐고, 이후 정규직으로 전환까지 됐다. 기관장의 입김에 공정한 절차를 깡그리 무시한 사례는 이뿐이 아니다. B기관은 2012년 상경계열 박사를 채용하는 과정에서 공고와 무관한 전공자에게 서류 합격을 통보했다. 이유는 면접장에서 밝혀졌다. 면접위원도 아닌 기관장은 임의로 면접장에 배석해 해당 인물을 ‘지원사격’했다.

평가점수를 조작한 일도 있었다. C기관은 2015년 면접 전형을 진행하면서 가점을 받을 수 있는 지원자에게 가점을 주지 않고 불합격 처리했다. 미리 합격을 결정한 지역 유력인사의 자녀를 위해 자리를 비워야 했기 때문이다. D기관은 2014년 선발예정 인원의 2∼5배수를 뽑기로 한 서류전형 합격자 수를 30배로 확대했다. 합격시켜야 할 사람이 합격권에 들지 못해서였다. 그래도 안 됐는지 다시 45배수로 늘려 서류전형을 통과시켰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0월 16일부터 지난달 30일까지 275개 공공기관의 최근 5년간 채용 과정을 전수조사해 지적사항 2234건을 적발했다고 8일 밝혔다. 기관장부터 채용 담당자까지 인사 청탁에 관여한 직급도 천차만별이다. 지방공공기관(824곳)과 공직유관단체(272곳)를 제외한 중간 조사 결과만도 이 정도다.

유형별로 면접위원 구성 부적절이 527건으로 가장 많았다. 인사 규정 미비(446건), 모집공고 위반(227건)이 뒤를 이었다. 특정인을 추가 채용하기 위해 부당한 평가를 내린 경우(190건), 선발인원을 채용 과정에서 변경한 경우(138건)도 있었다.

채용비리로 볼 수 있는 ‘엄중한 위반’은 166건이나 됐다. 정부는 이 가운데 23건을 수사 의뢰할 방침이다. 정부가 임시로 마련한 채용비리 신고센터에 접수돼 수사를 의뢰한 21건을 포함하면 수사 대상만 44건에 달한다.

정부는 이달 말까지 비리 근절을 위한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김용진 기재부 2차관은 “부당하게 불합격 처리된 사람을 구제하기 위한 방안도 심층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