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필요성 대두… 엄격한 적용 방안 마련 목소리
장시호·이헌수 사례 보면
우리나라도 사실상 시행
미국선 95% 사건서 적용
재판절차 비용 절감 등 효과
남 잘못 이용 선처 요구가
국민 법감정에 배치 의견도
지난 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징역 2년6개월 형을 선고받은 장시호씨는 “머릿속이 하얗다”며 당황했다. 검찰은 “책임을 회피하기 급급한 다른 피고인들과 대조적 모습을 보였고, 실체적 진실 규명에 기여했다”며 법정 최저형량인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었다. 특검 도우미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장씨의 법정구속은 시민사회에서도 이슈였다.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가 박근혜정부 청와대의 뇌물로 건너가는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 이헌수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은 불구속 상태다. 법조계는 이 전 실장의 수사 협조와 무관하지 않은 조치로 본다. 법조계 관계자는 “향후 검찰의 공소유지 과정에서도 이 전 실장의 증언 유지가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사례들은 한국에서도 광의의 플리바기닝(plea bargaining)이 이뤄지고 있고, 시민들도 일정 부분 현실로 보고 있다는 방증이란 분석이 나온다. ‘유죄협상제도’로 번역되는 플리바기닝은 검사와 피의자가 유죄 부분과 구형·기소하지 않을 부분을 합의하고 법원의 승인을 얻는 제도를 말한다. 미국식 국민참여재판이 도입되고 공판중심주의가 강화된 2008년 이후 법학계와 재조법조계에서는 플리바기닝 도입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자백감면절차 신설을 제안했었다.
법무부는 수사협력과 자백이 재판절차의 비용을 절감, 국민 세금 부담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강조한다. 잘못을 반성하고 수사에 협조하는 피의자·피고인에게 일정 혜택을 부여하는 것이 정의 관념에 합치한다는 주장도 꾸준하다. 미국의 경우 95% 정도의 사건이 플리바기닝을 거친다는 통계가 언급되기도 한다. 지난 6일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에서도 “플리바기닝이 수사에 도움을 주는 측면은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국민의 법감정은 다르다. 남의 범죄를 일러바치면서 자신의 선처를 구하는 일에 쉬이 동의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범죄 피해자가 협상에서 빠지는 꼴이라는 반론이 컸다. 문무일 검찰총장도 “국민의 입장에서 필요성에 대한 신중한 검토 및 학계와 실무 차원의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범죄가 고도화되는 현실 속에서 법조계는 플리바기닝을 무조건 배척할 게 아니라 엄격한 적용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더욱 생산적이라는 논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법조계는 미국 연방 검찰이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피의자를 불기소할 수 있게 하는 데 주목한다. 원하는 협조를 얻기 위해 다른 수단이 이용 불가능하거나 비효율적일 때, 공익을 위해 협조가 명백히 요구될 때, 상급 검사의 승인을 받았을 때 등이다.
비자발적 플리바기닝은 무효로 만들 수 있는 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검사가 무거운 범죄로 기소하겠다며 피의자를 회유하는 권한남용 행위를 방지하자는 취지다. 플리바기닝 과정을 영상으로 남기고 검찰 내부 위원회 감독을 받는 방안이 거론된다. 제도 도입 시 검찰·법원에 플리바기닝의 구형·양형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크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수사 도울게, 선처해다오”… 플리바기닝을 어쩌나!
입력 2017-12-09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