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억 대륙의 무역보복, 다음 타깃은 호주?

입력 2017-12-08 05:00

호주, 외국의 정치기부 금지 추진
中 농업·부동산 투자 급증하자
경제종속 위기감에 다방면 견제
“反中 히스테리” 中 거칠게 반발

중국이 끊임없이 자국에 대해 배타적 태도를 보여온 호주 정부와 현지 언론에 분노를 터트렸다. 호주 정부가 ‘외국의 정치기부 금지’ 법안을 제정키로 하자 중국은 ‘반중국 히스테리’ ‘냉전적 사고’라는 거친 표현까지 써가며 맞대응에 나섰다. 무역에서 중국 의존도가 높은 호주에 경제 보복이 가해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 매체들은 7일 호주 주재 중국대사관의 공식적인 반발 내용과 함께 호주 정부와 언론이 그동안 중국에 적대감을 표출한 사례를 자세히 보도했다.

현지 중국대사관은 전날 성명에서 “일부 호주 정치인과 정부 관리는 정치적 상호 신뢰를 해치는 무책임한 발언을 했다”고 지적했다. 또 “호주 언론 보도는 냉전적 사고와 이념적 편견으로 가득 차 있고, 전형적인 반중국 히스테리와 편집증을 보여주고 있다”고 비난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호주의 태도는 195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을 연상시킨다”고 가세했다. 중국이 호주 정부의 법 제정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은 그동안 호주의 반중국 태도에 대한 감정이 누적됐기 때문이다.

맬컴 턴불 호주 총리는 지난 5일 “로비 단체에 대해 외국의 기부를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최근 몇 년간 중국 정부와 관련 있는 기관과 개인이 호주 정치권에 약 73억원을 제공했다는 보도가 나온 뒤여서 중국을 겨냥한 법안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호주 정부는 그동안 자국 내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겨왔다.

CNBC에 따르면 호주 농업 분야에 대한 중국의 투자가 2015년 3억 달러에서 2016년 10억 달러로 3배 이상 늘어났다. 중국 자본 유입으로 주택 가격도 상승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드니와 멜버른의 주택 가격은 각각 98%와 84% 상승했다. 지난해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스 부동산 공급분의 4분의 1을 외국인이 사들였는데 이 중 87%가 중국인이었다. 중국과 호주 간 무역 규모는 1750억 호주달러(약 145조원)로, 호주와 미국 간 660억 호주달러의 거의 3배나 된다. 중국인들이 호주 부동산을 싹쓸이해 값을 올려놓는다는 불만과 함께 대중 경제종속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호주의 한 방송사가 지난 6월 ‘중국 공산당이 호주에 어떻게 침투하는가’라는 제목의 선정적인 보도를 할 정도로 반중국 정서가 강하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호주 정부는 중국에 대한 견제 정책을 유지해 왔다. 턴불 총리는 지난 6월 초 싱가포르 아시아안보회의에서 “강압적인 중국은 자율권과 전략적 공간을 빼앗긴 이웃들의 분노 섞인 요구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남중국해에 인공섬을 건설하고 군사기지를 설치한 중국의 행태를 꼬집은 것이다.

호주 정부는 또 지난달 23일 14년 만에 내놓은 외교백서에서 “중국은 2차대전 종전 이후 유지된 미국의 지배력에 도전하고 있다”며 “중국이 영토분쟁과 관련해 더욱 호전적으로 바뀌었다”고 지적해 중국의 강한 반발을 샀다. 호주는 미국 일본 인도와 함께 ‘4자 안보대화’에도 긍정적이어서 중국을 자극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호주 멜버른대학을 비롯한 일부 대학에 중국어로 “중국인들의 건물 출입을 금지한다. 이를 어기고 안으로 들어가면 강제 추방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문이 붙어 파문이 일기도 했다.

호주 재계는 사태가 확산될 경우 자칫 중국이 무역보복 조치를 취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