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이 치열한 경쟁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실력 증명하는 것
프로농구 전자랜드 가드 김정년
쓰라린 좌절 딛고 프로진출 꿈 이뤄
작년엔 실업팀서 활약하던 김준성
드래프트로 SK 입단… 1군행 구슬땀
잇따른 방출 등 아픔 겪은 이강혁
프로야구선수 꿈 포기 않고 도전장
프로 스포츠의 세계는 냉정하다. 1군 경기에 뛸 수 있는 선수의 숫자는 한정돼 있다. 그래서 주목받는 선수가 되려면 피와 살을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선수들이 살아남는 방법은 오로지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는 것뿐이다. 물론 누구나 한 번쯤은 실패를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실패를 교훈삼아 화려한 재기를 꿈꾸는 '스포츠 미생'들이 있다. 쓰라린 좌절을 맛본 이들은 언젠가 다시 찾아올 따뜻한 봄날을 기다리며 겨울을 잊은 채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2017 프로농구(KBL) 신인 드래프트가 열린 지난 10월 30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 1라운드부터 시작된 드래프트가 거의 끝나갈 무렵, 구단의 부름을 받는 선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러다 4라운드 5순위 지명권을 가진 인천 전자랜드 유도훈 감독이 178㎝ 가드 김정년(25)의 이름을 외쳤다. 4년 만에 다시 드래프트 무대에 선 김정년이 극적으로 프로 진출의 꿈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지난 4일 경기도 고양보조체육관에서 열린 전자랜드와 상무의 KBL D리그(2군 리그) 경기에 앞서 김정년을 만났다. 그는 “프로는 정말 꿈꿔왔던 자리여서 너무 행복했다”고 드래프트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농구를 할 수 있어서 너무 즐겁고, 배우는 것에 감사하다. 부족한 부분이 아직 많아서 무조건 열심히 하고 있다”며 미소를 지었다. 요즘 그는 긴 공백기를 이겨내고자 체력 강화, 기본적인 수비 등에 초점을 맞춰 훈련하고 있다.
김정년은 안양고 농구부를 거쳐 경희대에 진학한 엘리트 선수였다. 그러나 팀 적응에 실패하면서 선수생활을 그만뒀다. 2013년 일반인 신분으로 KBL 드래프트에 참가했으나, 그를 불러주는 구단은 없었다. 생애 첫 드래프트에서 낙방한 김정년은 실망감이 컸고, 이듬해 현역으로 군에 입대했다.
그런데 군대에서도 자꾸만 농구 생각이 났다. 개인 시간이 주어질 때마다 농구공을 잡았다. 휴가를 나와서는 일반인 동호회 팀에서 농구를 했다. 전역 후 학업에 열중하겠다고 다짐했건만 발걸음은 어느새 농구 코트로 향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가슴 속에 고이 품어온 농구선수의 꿈. 김정년은 고민 끝에 다시 농구를 하기로 결심했고, 지난 1월 실업팀인 세종시체육회에 입단했다. 그리고 지난 9월 전자랜드가 개최한 3대 3 농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을 계기로 프로와 인연을 맺었다.
지난해 KBL 드래프트에서도 김정년처럼 오랜 공백을 딛고 프로에 입문한 선수가 있다. ‘눈물의 인터뷰’로 화제를 모은 김준성(25·SK 나이츠)이다. 사실 김정년도 김준성이 프로에 진출하는 것을 보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고 한다.
명지대 출신인 김준성은 2014 드래프트에서 어느 구단의 선택도 받지 못했다. 이후 생계를 유지하고자 모교인 명지대 코치는 물론이고 카페, 어린이 농구교실 강사, 장례식장 매니저 등 아르바이트를 했다. 농구선수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동호회 농구를 하다 실업팀 놀레벤트 이글스에 입단했고, 전국체육대회에서 두각을 보인 끝에 프로 무대를 밟았다.
1년이 지난 지금 김준성은 주로 2군에 머물고 있으나 과거의 절실함을 잊지 않고 1군행을 위해 묵묵히 훈련하고 있다. 작은 신장(177㎝)에서 오는 약점을 만회하고자 웨이트트레이닝에 특히 신경을 쓰고 있다. 슈팅력을 키우려고 새벽같이 일어나 코트에서 공을 던지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김준성은 “프로에서 운동할 기회를 잡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이런 기회조차 없는 선수들이 많다”며 밝게 웃었다.
미생들은 기적처럼 프로에 입단하지만 ‘생존 경쟁’이라는 냉철한 현실과 마주한다. 김준성은 “지난 시즌에는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이 앞섰다. 올 여름 내내 정말 열심히 했는데 1군 엔트리에 못 들어 아쉽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아직 제 기량이 부족한 것 같다. 올 시즌 팀 성적과 선후배들의 전력이 좋다. 좋은 분위기에 맞춰 내 실력도 끌어올릴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강혁(26·파주 챌린저스)은 프로야구(KBO)팀 2곳, 독립야구팀 3곳을 거친 야구 미생이다. 대구고 출신인 그는 2010 신인드래프트에서 떨어진 뒤 삼성 라이온즈 육성선수로 입단했다. 그러나 잠재력을 증명하지 못했고, 부상까지 겹쳐 2년 만에 방출됐다. 이후 군 복무를 마친 그는 2014년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 2015년 연천 미라클을 거쳐 지난해 NC 다이노스 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나 현실은 차가웠다. 이강혁은 재입단의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또 다시 프로 세계를 떠나게 됐다.
이강혁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 1월 독립야구단 파주 챌린저스에 입단했다. 현재 비시즌이지만 매일 개인운동을 하며 재도전의 발판을 마련 중이다. 프로에서 부족함을 느꼈던 장타력과 수비 보강에 힘쓰고 있다.
내년이면 이강혁은 독립야구단 생활로만 4년차다. 지칠 법도 하지만 그는 “‘지친다’는 감정은 제게 사치다. 오늘 하루만 보고 살자는 생각으로 연습하고 있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이어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도전하는 게 맞다.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고 멈추지 않는 도전의식을 나타냈다.
이들 미생은 자신들처럼 좌절과 역경 속에서도 프로선수로서의 꿈을 꾸는 많은 선수들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큰 그림보다는 단기 계획을 잡고 열심히 반복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올 것입니다. 굳은 의지로 끝까지 함께 도전해 뜻을 이뤘으면 좋겠습니다.”
박구인 기자capta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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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12-08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