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30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정무위 국정감사장에서 사후에 객관적인 증거, 예를 들어 검찰 수사, 국세청 조사, 금감원 검사 등에 의해 차명계좌로 밝혀진 계좌에 대해서는 이를 금융실명제 위반으로 봐서 고율의 차등과세를 적용하겠다고 답변했다. 보도해명자료까지 기민하게 내서 “이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고 옛날부터 이렇게 해석해 왔던 것”이라고 했다.
아마도 여기까지가 대중들이 알고 있는 상황일 것이다. 그 때 많은 언론들은 과거 조준웅 삼성 특검이 하지 못했던 이건희 삼성 회장의 금융실명제 위반에 대한 진정한 사후처리가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고 그 핵심에는 여전히 “거의 변하지 않은 금융위”가 자리하고 있다.
당초 조준웅 특검이 밝힌 이 회장의 차명계좌는 1199개였다. 이중 2개는 중복 계좌로 밝혀져서 최종적으로 남은 계좌는 1197개였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은 금융실명제 위반과 관련한 정밀조사를 벌여 이 중 176개 계좌를 제외한 나머지 1021개 계좌는 명의대여인에 대한 최소한의 실명확인 절차조차 지켜지지 않았던 점을 밝혀냈다. 따라서 이들 계좌에 대해서는 합의차명이 허용된 것인지 아닌지를 논할 필요조차 없이 실명확인절차가 완료되지 않은 것이므로 그 즉시 금융실명제 위반에 대한 처리를 했어야 했다.
최 위원장 답변이 의미있는 변화를 가져오는 부분은 이 회장의 차명계좌이기는 하지만 명의대여인에 대한 형식적인 실명확인은 제대로 된 176개 계좌 처리 부분뿐이다. 이들 계좌는 최 위원장의 답변에 따르면 “(조준웅 특검이라는) 검찰 수사에 의해 차명계좌임이 드러난 계좌”이므로 그냥 비실명재산으로 간주하여 소득세 차등과세를 적용하면 그 뿐이다.
지금 코미디로 흐르고 있는 부분은 금융실명제 이전에 개설된 차명계좌 20개 계좌에 대한 처리 부분이다. 금융실명법 제정 당시의 부칙에 따르면 이런 기존 비실명 계좌는 실명전환 없이는 인출이나 해지 등이 금지되고(그런데 실명전환 없이 인출이나 해지됐고), 실명전환을 통해 인출 등을 할 때는 금융실명제 실시 당시의 가액의 50%를 과징금으로 원천징수하도록 돼 있었다(그런데 하지 않았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이들 20개 계좌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하여 징수하는 것이다. 시효 문제도 없다. 왜냐하면 이들 계좌에서 돈이 인출된 시기가 2008년이어서 이 때를 과징금 부과 시기로 본다면, 아직 부과제척기간 10년이 만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금융위는 이 과징금 부과에 대해 막무가내로 “부과 불가”를 외치고 있다. 논리도 사실상 없다. 그냥 버티기다. 금융위의 주장처럼 기존 비실명 계좌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할 수 없으려면 이들 20개 계좌가 실명계좌여야 한다. 금융위는 한 때 그런 주장을 펴기도 했다. 즉 타인의 실명을 사용한 계좌는 실명계좌라는 것이다. 그러나 기존 비실명 재산은 금융실명제 전격 실시를 선언한 대통령 긴급명령에 의해 ‘실지 명의’로 전환해야 할 의무를 어긴 자산들인데, 이 때의 ‘실지 명의’는 현행 금융실명법상의 ‘실지 명의’와 완전히 동일한 개념이다. 따라서 이들은 검찰의 수사로 밝혀진 차명계좌일 뿐인 것이다. 게다가 타인의 실명을 이용한 형식적인 실명확인과 관련해서도 그 확인절차조차 제대로 준수하지 않아서 금융감독원의 검사때 문제가 되었던 계좌들이다. 그런데 도대체 금융위는 무엇을 위해 이 20개의 계좌들을 악착같이 보호하려고 하는가?
금융위의 태도가 문제다. 금융위는 그렇지 않아도 금융감독체계 개편시 금융개혁의 대상 중 영순위로 꼽히는 조직이다. 그런데 과거사 문제를 대하는 금융위의 태도를 보면 이런 선입견이 오히려 강화될 뿐 조금도 다른 생각을 가질 여지를 주지 않고 있다. 그것이 금융위의 선택이라면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금융감독의 발전을 생각하면 서글플 뿐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경제시평-전성인] 금융위원회가 문제다
입력 2017-12-05 18:14 수정 2017-12-05 2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