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도움으로… 여당, 명분·실리 다 챙겼다

입력 2017-12-04 22:32 수정 2017-12-04 23:25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4일 내년도 예산안 여야 합의가 이뤄진 뒤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최종학 선임기자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왼쪽)가 의원총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앞줄에 이용호 정책위의장, 박지원 전 대표가 있다(오른쪽 사진). 뉴시스
여야가 4일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잠정 합의안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챙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보수야당은 막판 야권 공조가 흔들려 여당 주장을 상당부분 수용한 결과가 나오자 내부 반발에 직면했다.

민주당은 막판까지 ‘벼랑끝 전술’로 야권을 몰아붙였다. 여당은 이번 예산안이 문재인정부의 첫 예산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야권을 상대로 여론전을 펼쳤다. 협상이 난항을 겪고,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처음으로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을 넘겼지만 핵심쟁점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협상 말미 국민의당이 민주당 쪽으로 기울면서 여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 상당수를 실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냈다. 소득세법 개정안과 기초연금 인상은 정부안대로 인용된 셈이고, 문 대통령의 핵심공약인 아동수당도 ‘2인 이상 가구소득’ 하위 90%에 해당하는 아동에게 전면 지원키로 했다. 법인세 인상은 과표구간을 2000억원 초과에서 3000억원 초과로 상향했지만, 당초 법안 취지가 ‘초대기업 증세’였던 만큼 정책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분 보전을 위한 일자리 안정자금 예산을 감액이나 ‘일몰 조건’ 없이 얻어내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공약 이행의 안전판을 확보했다.

정부가 1만2221명을 증원하겠다던 공무원 증원 규모는 진통 끝에 2746명 축소한 9475명에 합의했다. 하지만 ‘밑진 장사’는 아니라는 평가다. 통상 정부의 연평균 공무원 충원 규모가 7000명인 만큼 2500명 정도는 경찰과 소방 인력 충원에 사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당초 정부 원안에 적시된 경찰·소방 공무원 증원 계획은 3400여명이었다. 잠정 합의안 도출 직후 강훈식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우리 당은 통큰 양보를 통해 문재인정부 첫 예산의 ‘사람 중심’ 가치를 지켜냈다”고 자평했다.

야당은 잠정 합의 직후부터 내부 반발에 부딪혔다. 특히 자유한국당에서는 “또 국민의당에 당했다”는 기류가 강하게 표출됐다. 예산안 협상에서 국민의당과의 대여(對與) 협공을 기대했지만 결국 추경안 처리 때처럼 국민의당이 중요 국면에서 여권 쪽으로 돌아섰다는 뜻이다. 116석인 한국당 단독으로는 예산안을 부결시킬 수 없어 또다시 국민의당에 밀린 모양새가 됐다.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는 당내 반발을 의식한 듯 합의문 발표 때부터 공무원 증원과 법인세 인상에 대한 유보 입장을 강조했다. 이어진 의원총회에서도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한국당은 5일 오전 의총을 다시 열고 합의안 수용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캐스팅보터’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낸 국민의당은 “이번 예산안 타결은 국민의당이라는 제3정당의 선도적 대안 제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그 대안의 큰 틀 내에서 타협을 유도한 결과”라고 스스로를 치켜세웠다. 그러나 의원총회에서는 일자리 안정자금 예산과 관련해 “내년부터는 편성하지 않는 방향으로 재협상하라”는 요구도 나왔다.

여야는 잠정 합의안 도출까지 온종일 분주히 움직였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와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오전 단독 조찬회동을 하며 합의안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 원내지도부는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으며 6시간 넘게 협상했고, 결국 잠정합의문에 서명했다.

글=최승욱 이종선 신재희 기자 applesu@kmib.co.kr, 사진=최종학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