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빚에 묶여… ‘알바 노예’된 청소년들

입력 2017-12-05 05:05
청소년 한탕주의 만연
스포츠도박에 50만원 잃고
알바해 번 돈으로 또 도박


약점 이용하는 어른들
인력난 시달리는 업주들
돈 빌려주고 계속 일 시켜


울산에 사는 윤모(18)군은 지난해 경기결과를 맞히면 배당금을 받는 불법 스포츠 도박을 인터넷으로 하다 50만원을 잃었다. 잃은 돈을 메꾸기 위해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번 돈을 또다시 스포츠도박에 다 써버렸다. 윤군은 또래친구들에게까지 빚을 지기 시작했다. 빌려준 돈에 비싼 이자까지 얹어 갚으라는 친구들이 많았다. 처음 잃은 50만원은 좀처럼 메꿔지지 않았다. 윤군은 “또래친구들이 사채보다 이자를 더 세게 받는다. 몇십만원 빌려주고 이자를 20만∼30만원까지 받는 경우도 있다”며 “이자를 내지 못하면 폭언·욕설에 시달렸고 추가로 이자를 더 붙여 갚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4일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 따르면 2015년 8월부터 3개월간 전국 중·고교생(고3 제외) 1만4011명을 조사한 결과 전체 학생 중 5.1%가 도박 중독 위험상태인 문제군·위험군으로 분류됐다. 학교 밖 청소년은 더 심각했다. 학교 밖 청소년 1200명 중 도박 문제군·위험군이 20%에 달했다. 조사에 응한 학교 밖 청소년들 중 35.1%는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도박 비용을 마련한다고 답했다.

온라인 도박에 빠진 청소년 중에는 도박 비용을 마련하는 수준을 넘어 도박으로 진 빚을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이모(18)군이 그런 경우였다. 온라인 도박으로 200여만원의 빚을 지고 있던 이군은 빚을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나섰다가 가게 주인에게 돈을 빌렸다.

가게 주인은 이군이 빌린 돈을 약점으로 잡아 악용했다. 이군이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지만 가게 주인은 “일을 그만두고 싶으면 당장 빌려간 돈을 갚으라”면서 “그렇지 않으면 계속 일을 해야 한다”고 윽박질렀다. 이군을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울산의 한 음식점 주인은 “5년 전에는 도박 빚을 진 청소년에게 돈을 꿔주고 이자까지 받아먹는 악질 점주도 있었다”며 “만성적으로 인력난에 시달리는 점주들 입장에서 미리 돈을 꿔주고 청소년 알바생을 가게에 묶어두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다”고 말했다.

도박이 빚으로, 빚은 다시 범죄로 이어진다. 고등학생 때부터 도박을 시작했다는 박모(21)씨는 지난해까지 총 1500만원의 도박 빚을 졌다. 그는 늘어나는 빚을 갚기 위해 집안의 귀금속을 훔쳐 팔기도 했다. 그래도 빚을 감당하지 못해 지난 10월 꽃게잡이 원양어선을 탔다. 그러나 박씨의 부모가 실종신고를 하는 바람에 박씨는 한 달여 만에 배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갔다.

이처럼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온라인 도박에 청소년들이 노출돼 있지만 이를 규제하는 손길은 없다시피 하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언제 어디서든 쉽게 접속할 수 있는 모바일 환경에서 청소년들의 도박 진입 문턱도 낮아지고 있다”며 “명의도용을 엄격히 처벌하고 인터넷 신원 확인절차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글=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