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때와 달랐지만, 바다는 가혹했다… 낚싯배 전복 참사 피해 컸던 이유

입력 2017-12-03 18:43 수정 2017-12-04 17:29
3일 오전 인천 옹진군 영흥도 해상에서 대형 급유선과 충돌해 전복된 낚싯배 선창1호 위에서 구조대가 실종자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이 사고로 낚싯배에 타고 있던 22명 중 13명이 사망했고 2명은 실종됐다. 옹진군 제공
낚싯배와 충돌한 급유선 명진15호.
22명 탄 낚싯배 참사…13명 사망 2명 실종

인천 영흥도 앞바다서 급유선과 충돌·전복
정부 발빠른 대응했지만 인명 피해 못막아
사망 11명 선내 발견… 순간 전복 탈출못해
구명복 입었지만 차디찬 바다에 저체온死


인천 영흥도 해상에서 낚싯배 선창1호(9.77t)가 급유선 명진15호(336t)와 충돌해 전복됐다. 이 사고로 선창1호에 타고 있던 22명 중 13명이 사망하고 선장과 승객 1명은 실종됐다. 2015년 제주 추자도 낚싯배 돌고래호 전복 사고 후 최악의 해양 사고다.

해경은 사고 신고 후 33분 만에 현장에 도착해 구조작업에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고 52분 만에 첫 보고를 받고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를 직접 찾아 상세 보고를 받았다. 세월호 참사 때보다 신속한 대응이었지만 인명피해가 컸다.

충돌 후 곧바로 전복돼 선실에 있던 승객들이 대피하지 못한 데다 겨울철 바닷물이 차갑고 물살까지 빨랐기 때문이다. 잠수사를 태운 구조 선박이 평택항에서 출발하느라 수중 구조의 골든타임인 1시간 내에 도착하지 못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사망자 13명 중 11명은 선내에서 발견됐다.

인천해양경찰서는 3일 브리핑에서 “오전 6시 영흥도 진두항을 출발한 선창1호가 5분 뒤 진두항 남서방 약 1.6㎞ 해상에서 명진15호와 충돌해 전복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선창1호에는 선장과 선원 등 승무원 2명과 낚시꾼 20명 등 22명이 타고 있었다. 사고 당시 7명은 바다에 빠졌고 1명은 선실에 갇혔다가 깨진 창문 틈으로 탈출했다. 선창1호 안에는 14명이 갇혀 있었다. 명진15호 선원들이 바다에 떠 있던 3명과 탈출한 1명을 구조했다.

해경 영흥파출소의 고속단정은 6시42분 현장에 도착해 16명을 더 구조했지만 이 중 13명은 사망했다. 앞서 6시9분에 명진15호 선장이 119에, 한 승객이 112에 신고했다.

사고 원인으로는 두 선박이 좁은 수로를 통과하다 부주의로 충돌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인천해경은 명진15호 선장 전모(37)씨와 갑판원 김모(46)씨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해경 관계자는 “선박 운항 때 전방 견시(見視) 의무가 있다”며 “사고가 예견되면 피하기 위한 조치를 해야 하는데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선창1호의 운항 부주의 가능성도 제기됐다. 구조작업에 나섰던 영흥도수협 관계자는 “사고 당시 선창1호에 냉각수가 나오지 않자 선장이 이를 고치러 기관실에 내려가 있었다고 이야기한 생존자가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해경은 선창1호가 합법적으로 허가받아 영업 중이었고, 출항도 정상 신고를 거쳤다고 밝혔다. 승선 정원을 준수했고 구명조끼도 모두 착용한 상태여서 구조에 대한 기대가 컸다.

공길영 한국해양대 항해학부 교수는 “선창1호 좌현 선미 쪽에 구멍이 크게 났다. 충돌 순간 충격이 꽤 컸던 것으로 보인다”며 “충돌로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익사하거나 차가운 바닷물 때문에 저체온증으로 숨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해경은 실종자를 찾기 위해 해경 경비함과 해군 함정, 민간 어선 등 함정 63척과 해경 및 해군·유관기관 헬기 등 항공기 11대를 사고 해역에 투입했다.

인천=손재호 이형민 정창교 기자 sayho@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