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코너에 올린 ‘주취감형 폐지’ 청원에 한 달 만에 21만여명이 동참했다. 2008년 이 조항에 따라 3년이 감형돼 12년형을 선고받은 ‘나영이 사건’의 범인 조두순의 출소가 3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주취감형을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번지고 있다.
주취감형은 술을 마셔 만취한 상태에서 범행할 경우 심신미약이라는 이유로 형을 줄여주는 것이다. 법적 근거는 형법 제10조 제1항과 제2항이다.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 분별 및 의사 결정 능력이 없거나 미약한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않거나 형을 감경한다는 내용이다. 과거 이 조항에 의해 주취 범죄에 대해 감형이 이뤄져 왔다. 그러나 조두순 사건 이후 주취가 면죄부가 될 수 없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제도 개선이 이어졌다. 대법원은 2012년 주취 상태 범죄에 대한 감경 기준을 강화하는 쪽으로 양형 기준을 마련했다. 국회도 이듬해 성폭력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한 심신장애 상태에서 성폭력 범죄를 범한 경우에는 심신장애 감경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이후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 받는 사례가 크게 줄었지만 법의 잣대는 여전히 관대하다. 양형 기준은 강제조항이 아니고 재판부의 재량에 맡겨져 있기 때문에 재판에서 심신미약이 감형 사유로 적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게 현실이다. 음주는 정신상태를 느슨하게 하고 폭력성을 증폭시켜 범죄를 촉발하는 경향이 있다. 경찰청이 발간한 ‘2016 범죄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검거된 살인 및 살인미수범 995명 가운데 390명(39.2%)이 음주 상태에서 범행했다. 성폭행 범죄는 6427명 중 1858명(28.9%)이 술에 취한 상태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취중 범죄를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범행했다며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다. 음주에 관대한 문화가 이런 범죄를 부추기는 건 아닌지 되돌아야 봐야 한다.
음주 상태에서의 범죄라고 형을 감경해줘서는 안 된다. 위험성을 알고도 술을 마신 것에 대해서는 무거운 책임을 지워야 한다. 만취 상태였다고 음주운전을 용서해 주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똑같은 범죄인데도 만취상태였다고 봐주는 건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가해자가 만취상태였다고 해서 피해자의 피해 정도가 달라지지 않는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자의로 술을 마셔 만취가 된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는 원칙적으로 감형 사유가 되지 않는다. 주취감형 제한을 성폭력 범죄에서 아동학대나 가정폭력 등 다른 범죄로 확대해야 한다. 아예 심신미약 감경 사유에서 주취를 제외하는 것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형법상 ‘책임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지만 자발적 음주까지도 적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재검토해야 한다.
[사설] 술 취했다고 언제까지 형량 줄여줘야 하나
입력 2017-12-03 17: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