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동지는 화성 15형 발사를 지켜보시면서 핵무력 완성의 위업 달성을 긍지 높이 선포하셨다.” 김정은이 이춘히 아나운서의 ‘친숙한’ 목소리를 빌려 핵무력 완성의 대업 성취를 알렸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사거리를 늘린 것은 사실이나 대기권 재진입 기술과 정밀타격에 필요한 유도기술은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화성 15형에 실어나를 수소폭탄의 소량화도 성공했다는 증거가 없으니 미국을 상대로 핵억지력을 확보했다 할 수 없다. 호언해 왔던 핵무력 완성 수준에 못 미친다. 국정원 분석대로 이번 실험은 내부 결속용일 수도, 미·중에 대한 불만 표출일 수도 있다. 그런 의도였다면 굳이 핵무력 완성 선언이 필요했을까? 국제사회의 압박에 핵심 기술을 구비하지 못한 상황임에도 조급히 핵무력 완성을 선포한 것은 아닐까? 압박을 제대로 한다면 시간은 북한 편이 아닐 수 있다.
핵미사일로 북이 누리려는 전략적 우위를 부인할 수 있는 기제가 억지라면 핵미사일 외길이 정권의 안전이 아니라 오히려 파멸로 귀결될 것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 ‘압박의 기술(Art of Pressure)’이다. 그렇다면 압박은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다양한 압박수단을 ‘전방위적’으로 그러나 유기적으로 구사해야 한다. 압박이라 하면 경제 제재만을 떠올리는 경우가 있지만, 압박의 수단은 다양하다. 전방위적 압박은 미국에서 ‘다임필(DIMEFIL)’이라는 신조어로 통용된다. 외교(Diplomatic) 정보(Information) 군사(Military) 경제(Economic) 금융(Finance) 첩보(Intelligence) 법집행(Law Enforcement)의 약어다. 실제로 미국의 외교 압박으로 국제사회 대 북한의 구도가 명확해지고 있다. 북에 동조적이었던 동남아와 아프리카 국가들도 교역이나 외교·군사 관계를 단절하며 등을 돌리고 있고 남미와 동유럽, 중앙아시아 국가들도 보조를 같이하고 있다. 이러한 구도는 북한뿐 아니라 중·러에도 큰 압박이다. 북한 정권의 실상을 알리는 정보전과 해상차단의 군사 압박, ‘피가 마르는 듯한’ 고통을 줬다는 BDA급 금융 압박과 모반이나 민중봉기를 도모하는 첩보활동, 반인도적 범죄로 북한 정권을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법집행 노력 등이 유기적으로 구사되면 북의 셈법이 바뀔 수 있다.
둘째, 비핵화라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끈질기게 구사해야 한다. 압박은 단기간에 성과를 거두기 어렵고 결국은 내구력 싸움이다. 갖은 고난의 감내를 강요할 수 있는 북한에 비해 대북정책이 정치화되는 한국이 구조적으로 불리한 싸움이다. 그러기에 정치 지도자와 오피니언 리더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들이 국민 역량을 결집해 긴장국면을 견뎌낼 수 있어야지 도발에 따른 피로감으로 협상 조급증을 보여서는 안 된다. 북한은 이제 완성된 핵무력 유지를 전제조건으로 핵미사일 실험은 유예할 테니 협상하자 할 수 있다. 이러한 협상에는 함정이 있다. 실험은 유예하더라도 협상으로 압박을 느슨하게 하고 시간을 벌며 핵무력을 실제로 완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문제를 덮고 가는 협상은 비싼 값으로 평화의 모양만 사는 것이지 문재인정부가 강조하는 ‘진짜 안보’가 아니다.
셋째, 한국이 앞줄에 서는 압박이어야 한다. 미·일은 압박에 분주한데 정작 한국 당국자의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미국 본토를 겨냥한 ICBM 실험이었으니 당장 미국의 압박은 더 거세질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핵은 일단 놔두고 ICBM 폐기를 조건으로 북한과 협상할 가능성은 염두에 둬야 한다. 한국이 걱정해야 하는 것은 미·북 간의 빅딜이지 미국의 강력한 압박이 아니다. 압박에 주저하는 모습은 미·북 간 빅딜의 구실이 될 수 있다. 압박의 기술이 제대로 들어가면 북한은 비핵화와 정권파멸 두 선택지를 놓고 고민할 수밖에 없다. 비핵화의 길을 택하느니 애써 만든 핵 한번 터뜨려나 보자 하면 어떻게 하냐고? 북한 정권은 ‘암살’에는 능하나 ‘자살’ 성향은 없어 보인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정치학 교수
[한반도포커스-김재천] 북핵 ‘압박의 기술’
입력 2017-12-03 1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