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들이 남긴 명문, 오늘의 문제와도 직결돼 있죠”

입력 2017-12-04 05:05
‘한국 산문선’ 시리즈 역자인 이종묵·안대회·정민 교수(왼쪽부터)가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했다. 작은 사진은 총 9권으로 출간된 한국 산문선. 민음사 제공
“빛나던 선인들의 인문 전통은 명맥이 끊긴 지 오래다. 자랑스럽게 읽던 명문은 한문의 쓰임새가 사라지면서 소통이 끊긴 죽은 글로 변했다. …해와 달과 별처럼 빛나고, 산천과 초목인 양 인문 세계를 꾸미던 명문의 전통을 없던 일로 밀쳐둘 수 있을까?”

출판사 민음사가 최근 펴낸 ‘한국 산문선’(전 9권) 첫머리를 장식하는 문장 중 일부다. 저런 내용의 서문을 쓴 사람은 한국의 한문학자 6명. 이들은 2010년부터 햇수로 8년간 교류하며 한국인이 남긴 최고의 산문을 추리고 번역하는 편역(編譯) 작업을 벌였다.

6명 중 작업을 주도한 사람은 이종묵(56) 서울대 교수, 정민(56) 한양대 교수, 안대회(56) 연세대 교수다.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이들은 “너무 힘든 작업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작업하는 내내 빨리 끝내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고도 했다.

“그동안 우리나라엔 역사 속 명문을 모은 대규모 선집이 사실상 없었습니다. 학자로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번 선집을 통해 우리 문화의 격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싶었습니다. 옛날의 글이지만 오늘의 문제와도 직결돼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겁니다.”(이 교수)

한국 산문선은 이 교수가 기획한 작품이다. 그는 2010년 평소 친분이 있던 정 교수와 안 교수에게 작업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했다. 두 교수는 제안을 받아들였고, 결국 이들은 각각 후배나 제자와 팀을 꾸렸다. 그렇게 한국 산문선 역자 6명의 진용이 꾸려졌다.

이 시리즈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기까지 1300년간 한국 사회에 필명을 날린 문장가 227명이 쓴 글 613편이 담겨 있다. 상소문 전기 일기 편지 등 글의 형태나 내용은 각양각색이다. 책은 산문들을 각각 한글로 풀어쓴 뒤 해설까지 덧붙인 구성을 띠고 있다.

산문선에 담을 글을 추릴 때 이들이 정한 선별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잣대는 “사유의 깊이와 너비가 드러나 지성사에서 논의되고 현대인에게 생각거리를 제공하는 글”이었다. 가독성이나 다양성도 염두에 뒀다. 민음사는 “조선 시대 문인 서거정(1420∼1488)이 1478년 펴낸 ‘동문선’ 이후 이 정도 규모의 산문 선집은 처음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동문선과 달리 일반인들도 읽기 쉽게 우리말로 번역한 선집이라는 게 차별화된 부분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해설에 공을 많이 들였다”면서 “산문들을 읽으면 글이 쓰인 당대의 시대상까지 엿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 역시 결과물에 대해 거듭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는 “고전이 가진 보편적 가치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작업이 너무 힘들긴 했지만 이 책이 지닐 가치에 대해선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다”면서 “고전의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한국 산문선은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