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악화 시 무력충돌 우려
초강경 대응보다
미국과 북한의 진의 파악 등
안정적 상황 관리에 주력
北의 ‘핵무장 셀프선언’으로
코리아 패싱 가능성 있어
역할 없이 끌려만 다닐 수도
청와대가 북한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 15형’ 발사에 강경 대응보다는 ‘안정적 상황 관리’에 주력하고 있다. 청와대는 발사 사흘째인 1일 “레드라인은 의미 없다” “북한의 핵·미사일은 북·미 간 문제” “(미국의) 대북 무력 옵션 사용 얘기는 없었다” 등 파장을 진화하는 발언을 잇달아 내놓았다.
청와대가 상황 관리에 주력하는 것은 북한의 이번 미사일 도발을 북핵 사태의 중대한 갈림길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악화될 경우 무력충돌 등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반면 제대로 관리되면 북핵 정국이 다시 대화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그러나 한반도 안보를 위협하는 북·미 갈등 속에서 정부가 큰 역할을 못한 채 끌려다니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레드라인이라는 게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한·미를 비롯해 모든 국제사회 구성원이 적극적으로 대북 제재와 압박에 참여하고 있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대북 원유 공급 중단까지 언급한 상황이다. ‘레드라인을 넘었다, 안 넘었다’는 차원이 아니라 최고의 압박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레드라인은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 변화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레드라인의 기준을 핵탄두를 탑재한 ICBM급 미사일 완성으로 규정한 뒤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어설 경우 우리(한국과 미국)가 어떻게 대응할지 알 수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은 화성 15형 발사를 통해 ICBM급 탄도미사일 기술 발전을 보여줬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난처한 레드라인 논란을 중지하자는 뜻을 피력한 셈이다.
청와대는 미국의 대북 군사공격 가능성은 일축하는 동시에 북한의 핵무력 완성 선언에 대해서도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전날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 통화에서 군사적 대응이나 해상 봉쇄 등 북한에 대한 구체적 요구는 없었다”고 말했다. 또 북한에 대해서는 “한·미는 북한의 핵무장 선언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ICBM 단계가 어디까지 갔는지는 면밀히 분석해야 하지만 핵무장 국가 인정은 별개 문제”라며 “미국과 국제사회와 협의를 통해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그리는 최선의 시나리오는 내년 미국과 북한의 대화 국면이 펼쳐지는 것이다. 청와대는 북한이 ICBM 관련 기술을 입증하지 않고 예상보다 일찍 핵무장 선언을 한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이 핵무장 선언을 한 뒤 본격적인 대화 국면에 나설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당분간 미국과 북한이 대화에 나설 가능성은 떨어진다. 북·미 협상 과정에서 한국이 제외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는 1차적으로 미국과 북한의 문제”라며 “우리는 북·미 대화를 통한 외교적 해결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코리아 패싱이나 북·미 직접 대화를 우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 달리 북한이 미국의 제재와 압박에 맞서 추가 도발을 강행할 경우 미·일과 북·중 사이에서 상황을 주도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은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靑, 北도발 파장 진화에 진땀… ‘운전자론’ 덜컹
입력 2017-12-02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