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내린 저금리, 가계부채 1400조… 年2조3천억 추가 이자 부담

입력 2017-12-01 05:00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30일 서울 중구 한은 본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 앞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윤성호 기자


전문가 긴급 진단

31만5000 고위험가구
이자 부담 크게 늘어
대출금리 지속적 상승에
실물경기 위축 가능성 우려

부동산 가격은 안정 효과
경착륙땐 가계부채 부실로

한국은행이 ‘초저금리 시대’에 작별을 고하면서 1400조원을 넘긴 가계부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실물경제가 위축될 가능성을 제기하는 시선도 있다.

전문가들은 본격 금리 상승기를 맞으면 31만5000가구에 이르는 ‘고위험가구’의 이자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본다. 이는 내수경기 후퇴로 연결된다. 중소기업 등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되살아나던 실물경제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금리 인상에 따른 부동산가격 안정 효과가 있지만 부동산 시장이 경착륙하면 되레 가계부채 부실을 유발한다.

한은은 대출금리 0.25% 포인트 상승에 따라 연간 이자 부담이 2조3000억원가량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30일 밝혔다. 다만 이번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대출금리 변동은 이미 반영돼 대출금리 추가 상승은 제한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리 인상 기대가 이미 시중금리에 많이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금융 당국도 급격한 금리 인상에 제동을 걸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시장금리나 조달금리 상승과 무관하게 과도한 대출금리 인상이 없도록 면밀히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관건은 내년 금리 인상 속도다. 하 교수는 “기준금리 인상이 단발에 그치지 않을 것이고 시중은행 등의 대출금리도 계속 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은과 통계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은이 기준금리를 한 차례 더 올려 연 1.75%가 되면 이자 부담이 4조6000억원 는다. 기준금리가 연 2.25%까지 오르면 9조3000억원의 이자 부담이 발생한다.

늘어나는 이자 부담은 ‘약한 고리’인 고위험가구부터 공격한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40% 초과이고, 자산 대비 부채평가액 비율(DTA)이 100%보다 큰 가구가 고위험가구다. 소득 가운데 40% 이상을 원리금을 갚는 데 쓰고 있으면서 자산보다 빚이 많은 가구다. 한은은 지난 6월 ‘금융안정 보고서’를 발표하고 지난해 기준으로 고위험가구가 31만5000가구라고 집계했다. 금융부채를 보유한 가구의 2.9%다. 고위험가구의 빚은 전체 가계부채의 7.0%(62조원)에 이른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이번 금리 인상으로 가계 부실이 갑자기 커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금리를 몇 차례 더 올리면 한계선에 있는 가계 가운데 이자 부담을 못 이기는 가계가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도 “원리금 상환 부담이 큰 한계차주가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재정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했다.

실물경제가 얼어붙을 수도 있다. 성태윤 교수는 “현재 호황이 아닌 산업은 금리 인상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최근 수출기업에 어려움을 준 원화가치 강세의 원인도 금리 인상에 대한 기대였다”고 분석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기업의 이자 부담이 늘어 실물경제를 위축시킬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실물경기가 위축되는 측면이 있지만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는 측면도 있다”며 “금리 인상에다 부동산값을 낮추기 위한 미시정책이 더해지면 경착륙 가능성이 생겨 가계부채가 부실해질 수 있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자본 유출 위기감은 낮아졌다. 이창선 수석연구위원은 “12월 미국 기준금리 인상에 앞서 올린 것이기 때문에 자본 유출 우려는 크지 않다”고 했다. 성태윤 교수는 “금리를 빠르게 올리면 장기 전망이 악화돼 자본 유출이 발생할 수 있다. 경기 상황을 보고 신중히 올리겠다는 게 한은 입장이기 때문에 자본 유출 우려는 낮아졌다”고 판단했다.

홍석호 기자 will@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사진=윤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