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구조개혁 대학 자율에 맡겨서 제대로 되겠나

입력 2017-11-30 17:37
영국 교육평가기관인 타임즈고등교육의 ‘2017 THE 세계대학평가’에서 서울대는 74위, 카이스트 95위, 성균관대 111위, 포항공대 137위다. 500위권 안에 드는 국내 대학은 11개에 불과하다. 세계 12위의 경제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대학 경쟁력은 형편없이 뒤처진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창의적 융복합형 인재를 키워내야 하는 책무가 대학에 있다. 하지만 국내 대학들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저출산 영향으로 학령 인구가 줄어들면서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들이 늘고 있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다. 대학 구조조정을 반드시 해야 하는 이유다.

박근혜정부가 재정 지원을 조건으로 정원 감축 등 대학 구조조정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교육부는 30일 지난 정부의 대학구조개혁평가를 폐기하고 대학기본역량진단으로 바꿔 대학 자율성을 높이겠다고 한다. 전국 대학 등급을 6단계에서 3단계로 간소화하고 정원 감축 권고를 받는 비율도 종전 84%에서 40%로 줄이기로 했다.

대학 혁신을 자율에 맡기겠다는 취지는 그럴 듯하다. 문제는 대학들이 스스로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나서겠냐는 점이다. 경쟁력이 떨어지거나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데도 재정 지원에 연명해 나랏돈만 빼먹는 부실 사학들이 부지기수다. ‘대학 살생부’라 불리던 구조개혁평가가 시행됐어도 지난 정부에서 폐교를 신청한 대학은 한려대 한 곳뿐이다. 문재인정부 들어선 설립자 비리, 파행적 운영 등으로 논란을 빚은 한중대와 대구외대가 내년 2월 문을 닫는다. 입학 정원을 못 채우는 대학이 속출하는데 대학 구조조정을 너무 느슨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2023년 고교 졸업생 수는 40만명으로 급감해 대학 정원(56만명)에 16만명이나 모자란다. 학령인구 감소 속도를 고려하면 대학 구조조정 속도를 더 빠르고 과감하게 해야 한다.

교육부가 권역별 균형을 고려해 자율개선대학을 선정하겠다는 것은 질 높은 지역대학을 육성하겠다는 취지로 바람직하다고 본다. 자율개선대학에는 대학이 자율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일반재정을 지원하고 정원 감축 권고가 내려지지 않는다. 기존의 대학구조개혁평가가 돈으로 대학을 서열화하고 지방대 죽이기라는 반발을 고려한 것이다. 국립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국립대 육성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것도 평가할 만하다.

대학 정원 감축을 강제하려면 19대 국회에서 여야 간 이견으로 자동 폐기된 대학구조개혁법이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 대학구조개혁법은 대학이 자진 폐교할 때 잔여 재산 일부를 설립자에게 돌려주거나 공익법인으로 전환하는 것을 허용한다. 부실 대학에 자발적인 퇴출 경로를 열어주는 것이다. 재정지원으로 대학 정원 감축을 유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