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와 외교부가 뒤늦게 공개한 서울 용산 주한미군 기지 지하수 환경조사 결과는 미군이 우리 정부에 반환 중인 기지들의 오염 실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1급 발암물질인 벤젠은 지난해 8월 조사에서 기준치를 671배 넘게 검출됐다. 중추신경계 손상을 초래하는 총석유계탄화수소(THP)를 비롯해 톨루엔, 크실렌 등 조사대상 5개 항목 모두 기준치를 크게 초과했다. 그동안 시민단체가 미국 국방부에 직접 요청해 확보한 자료 및 서울시의 기지 외부 조사로 일부 드러난 실태가 모두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문제는 오염된 기지를 어떻게 정화하느냐다. 지금까지 오염이 확인된 주한미군 기지 25곳과 마찬가지로 수천억원으로 예상되는 용산기지 정화비용은 우리가 부담할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는 이미 2000억원이 넘는 돈을 사용했는데 미군은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의 ‘환경보호에 관한 특별양해각서’에 의거해 비용을 전혀 부담하지 않았다. 미군이 비용을 부담하며 책임을 져야 하는 ‘심각한 오염’ 여부를 미군이 판단토록 한 불평등한 협정 탓이다.
지금은 북한이 미사일 도발을 다시 시작해 공고한 한·미동맹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주한미군이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더럽혔다는 식의 감정적인 대응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성적인 판단에 기초해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환경부는 용산기지 반환을 앞두고 마지못해 환경오염 실태 조사에 나섰으나 좀처럼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번 결과 발표는 시민단체가 집요하게 소송을 계속한 끝에 이뤄졌다. 이런 태도부터 고쳐야 한다.
동시에 미군 측에 당당하게 원상회복을 요구해야 한다. 국민 사이에서 “누구를 위한 정부냐”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결코 미국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설명해야 한다. SOFA 규정을 현실에 맞게 하나하나 고쳐나가야 함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사설] 용산기지 오염, 감정 자제하고 합리적 해결책 찾아라
입력 2017-11-30 1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