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生)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한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데서 출발할 것이다. 그 아득한 시간 속에 서 있는 남녀의 이야기. 그들의 연애와 결혼 이야기를 아들딸이 들려주는 에세이 ‘나의 아름다운 연인들’이 나왔다. 창립 10주년을 맞은 달출판사가 ‘엄마 아빠, 그땐 어땠어?’라는 제목으로 독자와 작가 71명의 이야기를 모았다.
“순간, 세상의 모든 엄마 아빠의 연애 시절이 문득 궁금했습니다. 두 사람이 있어서 우리를 이 세상에 올 수 있게 했던, 오래전 어느 날들이.” 서문의 한 대목이다. 책에는 오래전 어느 날의 이야기가 사진 한 장과 함께 소개돼 있다. 가령 1985년 강원도 강릉 경포 민박집에서 남녀 한 쌍이 밥을 떠먹는 장면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첫 데이트의 첫 메뉴는 모둠회다. 대(大) 자를 주문했다는 아빠. 엄마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아빠 마음의 크기가 아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실수였다. 두 사람은 횟집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회를 못 먹는다는 걸.” 잘 먹지도 못하는 음식을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주문하고 또 여자는 남자를 위해 억지로 먹어주고.
슬며시 웃음이 난다. 연애 초기를 떠올려 보면 대개 이런 에피소드가 있으니까. 지금은 너무나 무덤덤해 보이는 내 부모에게도 이런 ‘썸’이 있었다는 걸 상상해보게 된다. 결국 두 사람이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해서 나를 낳았다면 그런 떨림과 설렘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책 속 이야기들은 그런 걸 계속 떠올리게 한다.
류미현씨에게 아빠는 절대 결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독불장군에 자린고비였다. 어느 날 엄마에게 “도대체 뭘 보고 아빠랑 결혼한 거야”라고 물었다. 엄마는 “아빠랑 어떤 가게에 갔는데 거기 직원이 화상 때문에 손과 얼굴이 다 일그러져 있었어. 그런데 아빠가 아무렇지 않게 먼저 악수를 청하는 거야. 그게 그렇게 좋아 보이더라”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읽노라면 부모가 서로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진다. 신혼 부부의 얼굴에서 평화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사진도 있다. 1960년대 신앙공동체에서 만난 두 사람이 신접 살림을 차린 곳은 충남 논산의 에덴보육원이었다. 아내는 보육원 총무로 고아들을 돌보고 남편은 닭을 키우며 글을 썼다. “두 사람의 수줍은 미소와 순한 눈매, 소박한 옷차림에는 아직도 종교적 청빈과 이상향에 대한 동경이 오롯이 남아있는 듯하다.” 딸은 이렇게 부모에 대한 인상을 기록했다. 사진 속 여인은 태아를 잉태하고 있었다. 그 아기는 66년 보육원에서 태어나 모유를 뗀 후 사진 속 얼룩염소의 젖을 먹으며 자랐다고 한다. 그 아기는 시인 나희덕이다.
수필가 호원숙은 소설가 박완서의 딸. 그도 박완서의 앳된 모습이 남긴 사진과 함께 글을 썼다. 호원숙은 “나에게는 엄마가 아버지를 당신이라고 부를 때의 음성이 슬프도록 아름답게 남아 있다. 그 목소리가 지닌 부드러움을 잊지 않으려도 애쓴다”고 했다.
아들딸이 쓴 짧은 글들은 어찌 보면 서툴고 투박하기도 하지만 이상하게 긴 여운을 남긴다. 우리 삶이 그 풋풋한 청춘의 사랑으로부터 기원하고 나 역시 그 사랑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까. 책장을 다 넘기고 나면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불쑥 물어보고 싶어질 것이다. “엄마 아빠, 그땐 어땠어?”라고. 그리고 그 얘기를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책과 길] 엄마 아빠, 그때 뭘 보고 결혼했어?
입력 2017-12-01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