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농지 강탈사건, 돈 안주려… 끝까지 갔던 국가

입력 2017-11-29 18:56
과거 구로공단 전경. /뉴시스

“배상할 시기 지났다”
상소 거듭하며 소송전
결국 이자까지 덤터기

변호인 “恨 풀었지만
피해자 대부분 사망”

“몇 개월마다 법원에 가서 ‘소송수계인 가운데 누가 사망했다’고 신고를 해야 했습니다.”

‘구로 분배농지 소송사기 조작사건’ 피해자들의 소송을 오래도록 대리해온 한 변호사는 29일 대법원이 국가의 책임을 최종 인정한 직후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재판이 너무 오래 걸리다 보니 결과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았던 게 가장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피해자는 물론, 그들의 ‘1대 자손’마저 몇 분 살아계시지 않다”고 그는 전했다.

1960년대의 얼룩진 과거사가 한풀이까지 50년이 넘게 걸린 데에는 뒤늦은 진실 발견 외에도 첨예한 소송 대립이 한몫했다. 국가는 상소를 거듭하며 최후의 순간까지 구로 분배농지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액을 낮추려 했다. 국가는 피해자들의 ‘권리찾기’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상규명 결정일에서 6개월이 지난 뒤에 이뤄졌기 때문에 배상 책임이 없다는 주장을 거듭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며 국가가 할 변명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심을 거쳐 형사재판에서의 무죄 판결이 확정된 2011년 12월까지는 피해자들이 권리 주장을 하기 어려웠다고 본 것이다.

국가는 배상액 부분에서 “농지가 구로공단으로 개발된 후 발생한 ‘개발이익’은 공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폈다. 피해자 측은 원심에서 인정된 배상액이 애초 분배 당시의 전·답 기준으로 감정한 것이기 때문에 개발이익이 포함돼 있지 않다고 맞섰다. 지가 상승은 경제규모가 커지고 도시가 자연적으로 팽창했기 때문이라는 항변도 폈다.

국가는 법원이 판단한 배상액의 이자라도 깎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배상을 할 시기가 지났다”는 항변이 배상액 원금에는 적용되지 않더라도 지연손해금을 따질 때에는 적용돼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피해자 측은 “현행법 어디에도 근거가 없는 위법한 주장”이라고 맞섰다. 오랜 다툼의 결과 피해자 다수는 세상을 떠났고, 국가로서는 이자 부담만 더하게 됐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