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저자의 책이 아니면 팔리지 않는 기독 출판계에서 소리 소문도 없이 1쇄를 돌파한 책이 있다. ‘질그릇에 담은 보배’(복있는사람)라는 담박한 제목의 책이다. 저자는 1991년 미국으로 건너가 예일대에서 종교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현지에서 목회와 연구 및 집필 활동을 해온,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권수경(56) 목사다. 지난 15일 책 발간에 맞춰 한국을 찾은 권 목사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에서 만났다.
그는 “성경의 개념을 일반 상식이나 관례, 전통에 기대어 잘못 풀어내는 경우가 많다”며 “세상의 주의(主義) 주장과 달리 기독교 복음만이 가진 특징과 유익성을 밝히고 싶어 쓴 책”이라고 소개했다. 기독교의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3대 가치 아래 신앙, 섭리, 겸손, 용서, 언약, 드림이라는 6가지 소주제별로 잘못된 해석을 조목조목 따져본다.
가령 그는 ‘낮아지라’고 가르치는 ‘겸손의 처세술’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말한다. 성경의 낮아짐은,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음식을 차려놓고도 “차린 게 없다”고 손사래 치는 식의 겸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동양적인 겸손은 내가 숙이고 있지만 당신보다 내가 낫다는 전제를 하고 있을뿐더러, 결국 자기를 높여달라는 목적이 있다는 점에서 위선적”이라며 “그런 설교에는 공자님은 있을지 몰라도 주님은 안 계신 것”이라고 말했다.
권 목사는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 20:26∼27)는 예수님의 가르침 등을 살펴본 뒤 “크게 되기 위해 섬겨야 한다는 방법적 겸손은 성경엔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기독교에서 스스로 낮은 자임을 깨닫는 겸손은, 구원의 개념으로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죄인인 줄 아는 것을 뜻한다”며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는 똑같은 존재”라고 강조했다.
권 목사는 믿음에 대해서도 시각의 교정을 주문했다. 그는 “세속적인 믿음관이 들어오면서 내가 신념을 굳게 가져야 진짜 믿음이고, 간절히 바라면 이뤄진다는 식으로 왜곡됐다”며 “내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한발 떨어진 거리에서 한국교회의 문제와 왜곡된 설교의 현실을 짚어낸다. 그의 글은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훈련에 신학적 통찰, 삶의 연륜까지 어우러져 쉽게 접하기 어려운 사고의 단편을 보여준다.
그는 서울대 철학과 재학 당시 학생신앙운동(SFC)을 세워 활발한 활동을 펼치면서 동생 권연경 숭실대 교수와 함께 주목받았다. 고려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M.Div)를 마친 뒤 하버드와 예일대 둘 다 합격했지만 세계적인 기독교 철학자 니콜라스 월터스토프와 루이 뒤프레가 몸담고 있던 예일대로 진학했다.
하지만 미국 생활은 순탄치 않아서 공부와 목회를 병행하며 박사 과정을 마치는 데 15년이 걸렸다. 학위는 땄지만, 자폐 증세를 보이던 둘째 아들의 교육 문제로 귀국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26년간 미국에서 세계 최고의 대학과 작은 동네 교회 강단을 오가며 연구와 설교를 함께했고, “그 시간 동안 매주 놀라운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그 여정을 통해 질그릇처럼 연약한 인간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구원의 신비를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9월 코네티컷주에서 인디애나주로 옮기면서 목회를 중단하고 집필만 이어가고 있다. 국내 활동을 준비 중이지만 정해진 사역은 없다. 그는 “고신에서 훈련받은 신앙 전통에 따라 한국교회가 철저한 말씀 중심의 신앙을 회복하는 일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다”며 “말씀만 가려내 바로 알고, 바로 믿고, 올바른 확신을 갖고 바로 살 수 있도록 다음세대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글=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사진=신현가 인턴기자
[저자와의 만남-권수경 목사] “믿음은 신념이 아니라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
입력 2017-11-30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