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작품 평가로 거액 챙기고
학원은 흘리는 입시정보 챙겨
불법이지만 선·후배로 끈끈
밥그릇 날아갈까 알고도 쉬쉬
서울 주요 대학 미대 교수들이 사설 학원과 유착해 입시 비리를 저지른 정황을 경찰이 포착해 수사에 착수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실기시험 직전 관련 주제를 학원에 교묘히 흘리는 방식의 비리가 수년간 지속돼 왔다는 학원업계 관계자의 증언도 나왔다. 2009년 홍대 미대 입시 비리 사건 이후 8년 만에 입시 비리 문제가 다시 불거져나왔다. 홍대는 이후 모든 미술 계열 신입생을 비실기 전형으로만 선발하고 있다.
국민일보 취재 결과 미대 입시업계 관계자들은 미대 입시 비리가 근절되지 않고 지속돼 왔다고 입을 모았다. 대형 미대 입시학원 전임강사 출신인 A씨는 “미대 입시 비리가 업계에 만연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원마다 친한 교수가 있고 미술학원장과 미대 교수가 사제간이나 선후배 관계로 묶여 있는 경우가 많아 입시 실기시험의 주제를 유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주요 미술학원의 원장은 유명 미대 출신이 다수를 차지한다. 학원장이 미대 교수의 제자인 경우, 학원장이 교수의 스승인 경우, 학원장이 교수와 동문인 경우까지 이들의 커넥션은 넓고 다양하다. 이 때문에 학원과 관계를 맺고 있는 교수가 수능시험이 끝나고 정시 실기시험을 보기 전 학원 수강생들을 상대로 작품 평가를 해주는 일도 흔하다. ‘교수평가’라는 명목으로 학생들의 작품을 점검해주는 것인데 이는 불법이다. 한 학원 관계자는 “교수들은 이에 대한 대가로 1회에 수백만원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경찰도 건국대 A교수가 돈을 받고 수강생 작품을 평가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현직 학원 강사들은 이 과정에서 미대입시 실기시험 주제가 흘러나오기도 한다고 언급했다. A씨는 “수년 전에는 교수가 ‘투명한 것 좀 잘 그리게 해 봐라’ ‘과일을 더 잘 그리게 해 봐라’는 식으로 에둘러 실기 주제를 흘렸다”며 “학원은 교수 말을 전부 녹취해 이를 분석했다”고 전했다.
한 미술학원 관계자는 “대학 전임교수가 학원으로부터 돈을 받고 평가를 해주는 게 정상일 수 없다”며 “전국미술학원연합회에서 1년에 한두 차례 개최하는 ‘전국연합 입시미술 실기대전’에 정식으로 교수를 초청해 평가를 진행하는 일을 제외하면 입시 시즌에 매주 교수가 찾아와 돈을 받고 학생들의 그림을 평가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학원법은 교수의 과외교습을 금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입시 미술학원 강사를 겸임하고 있는 미대 조교들 일부도 정보 유출의 창구로 지목했다. 입시 미술학원에서 강사로 일했던 B씨는 “학교에서 조교를 맡고 있는 학생들 중에 학원 강사를 겸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학과 내부의 민감한 입시 정보가 새어나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울권 유명 미대 졸업생 C씨는 “미대생들은 대개 미술학원 출신이라 대학교 1, 2학년 때부터 자신이 다닌 학원에서 강사 일을 하며 용돈벌이를 하고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곤 한다”고 말했다.
미대 교수와 입시 미술학원 간 밀월관계는 양측이 오랫동안 학원·동문 관계로 얽혀 폐쇄적인 구조를 유지하면서 강화돼 왔다. 현직 미술학원 강사인 D씨는 “미대입시 실기평가를 주력으로 가르치는 학원들은 관련 비리가 불거지면 실기 시험이 폐지돼 ‘공동의 밥그릇’이 사라지는 것을 가장 염려한다”며 “학원업계는 이런 문제를 알고 있어도 쉬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단독] 미대 입시 비리 먹칠… 근절되지 않는 ‘교수-학원’ 유착
입력 2017-11-28 18:52 수정 2017-11-30 1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