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 기간까지 사용처
소명 못하면 집행 불가능’
국회 예산소위, 조건 달아
특활비 제어장치 마련
국정원, 4930억원 제출
與 요구 반영 10% 삭감
국가정보원의 내년도 특수활동비(예산) 중 일부가 사용처를 소명해야 쓸 수 있는 ‘조건부 예산’인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국회가 사용처조차 몰랐던 국정원 특수활동비 일부를 통제할 수 있는 제어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국정원과 국회 정보위원회 등에 따르면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내년도 국정원 예산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전체 예산 중 필요 없는 예산은 다 깎자”며 일부 항목에 대한 사용처를 소명하라고 국정원에 요구했다. 하지만 국정원은 보안 문제 등을 이유로 일부 예산 항목의 용처를 밝히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민주당 의원들은 소명을 요구한 예산 항목 사용 내역을 국회에 보고하기 전까지 집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절충안을 관철시켰다. 정보위는 27일 예산소위에서 국정원이 소명을 거부한 항목을 포함한 내년도 예산안을 일단 통과시켰다. 하지만 소명이 되지 않은 일부 예산 항목 집행을 위해서는 ‘반드시 일정 기간까지 국정원이 사용처를 국회에 소명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정보위 관계자는 “국정원 예산을 투명하게 집행해 청와대 상납 같은 문제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라며 “국정원 예산에 이만큼 까다로운 집행 조건이 붙은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은 특활비 상납 논란에도 불구하고 내년도 예산으로 올해와 같은 규모인 4930억원을 국회에 제출했다. 일부 조직이 통폐합되고 정보 조직이 축소되면서 예산을 깎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국정원은 “모두 다 꼭 필요한 예산이고, 절대 깎을 수 없다”며 반박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여당 의원들은 “과거 잘못된 예산 사용이 드러난 만큼 책임을 물어야 하고 삭감도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예산 삭감 방침을 고수한 여당 의원들과 이에 반발한 국정원은 예결소위 예산안 의결 직전까지 격론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각종 공작비 관련 예산을 삭감하자는 주장에 특히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자유한국당 등 야당 의원들이 나서서 “이런 부분까지 깎는 건 너무하다”며 국정원 입장을 두둔하는 일도 벌어졌다.
결국 여당의 삭감 요구가 많이 반영되면서 국정원의 내년도 전체 예산은 10% 이상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29일 정보위 전체회의에서 국정원 예산 일부가 다시 조정될 가능성도 있다. 일부 의원들이 예산소위의 삭감안에 반발해 증액을 요구하거나 추가 삭감 의견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국가재정법에 특활비 범위를 ‘국가 안보를 위해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수집 및 사건 수사 등 국정수행 활동에 직접적으로 소요되는 경비’로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기로 했다. 국정원 예산에도 국가재정법상 예산 원칙인 ‘예산의 투명성’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또 특활비의 구체적인 세목을 나눠 예산을 요구하도록 하고, 감사원이 국정원의 예산 사용을 비공개 감사할 수 있도록 추진할 방침이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
[단독] 국정원 예산 일부 항목에 ‘통제 꼬리표’ 붙였다
입력 2017-11-28 18:53 수정 2017-11-28 2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