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정당한 불출석 사유 없다”… 궐석재판 결정
국선변호인 “궐석 염두 준비
피고인 방어권 위해 최선”
朴 접견 신청은 거부당해
‘반란죄’ 전두환·노태우는
보이콧 선언했다가 출석
박근혜 전 대통령이 끝내 재판 받기를 거부했다. 사건을 심리 중인 재판부가 최후통첩을 보냈지만 박 전 대통령은 28일 재판에 나오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 없이 ‘궐석(闕席)재판’을 진행하겠다고 최종 결정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궐석재판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는 “박근혜 피고인에게 심사숙고할 기회를 줬지만 오늘도 출석하지 않았다”며 “형사소송법 규정에 따라 피고인 출석 없이 공판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형사소송법 제277조2항은 피고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재판에 나오지 않거나, 교도관이 강제로 법정에 데려올 수 없을 경우 궐석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연이은 출석 거부 등 현재 상황이 해당 요건을 충족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허리통증을 호소하고 있지만 거동이 어려울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된다”며 “불출석에 정당한 사유가 없다고 보인다”고 결론지었다. 또 “구치소 측이 인치(引致·구속된 피의자를 강제로 데려옴)가 현실적으로 곤란하다고 한다”며 “아직 심리할 내용이 많이 남아있는 점, 구속기간이 제한돼 있는 점 등을 고려해 더 이상 재판을 늦출 수 없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검찰과 국선변호인단 모두 이견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예정대로 김건훈 전 청와대 행정관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재판이 끝난 뒤 국선변호인인 강철구 변호사는 재판부 결정에 대해 의견을 묻는 취재진에게 “궐석재판도 염두에 두고 변론을 준비해 왔다”며 “피고인 방어권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답했다. 박 전 대통령을 접견할 의사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만나야겠다는 생각은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선변호인단은 박 전 대통령에게 세 차례 접견을 신청했지만 모두 거부당했다.
전직 대통령의 재판이 파행 위기를 겪은 게 처음은 아니다. 1996년 군 형법상 반란죄 등으로 구속 기소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도 출석을 거부하고 변호인단이 전원 사임계를 내는 등 ‘재판 보이콧’을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재판부는 “재판 날짜 문제는 재판부의 고유권한으로 협상대상이 될 수 없다”며 “변호인단 복귀 여부와 상관없이 재판 진행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왔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구속 피고인의 궐석재판은 통계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드문 일”이라며 “방어권 행사가 어렵게 됐지만 피고인 스스로 방어권을 포기한 것이라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인치를 결정하지 않은 것은 그동안 재판과정에서 수차례 불출석하는 등 박 전 대통령이 보여준 태도 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재판 외면한 박근혜… 박근혜 외면한 재판부
입력 2017-11-29 17:10 수정 2017-11-30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