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현장 출입금지. S-1 생활권 종교용지’.
28일 찾아간 세종시 연기면 세종리 575-1번지 일대는 진입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포클레인 2대가 토지정리 작업을 하는 공간 뒤쪽으로 전월산이, 좌우편엔 각각 세종국책연구단지와 국무총리 관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금강이 흐르는 정면엔 세종호수공원이 자리하고 있고, 국립수목원도 들어선다. 서울 지형으로 따지면, 최고의 명당으로 꼽히는 청와대 자리나 다름없다.
“세종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곳에 한국불교문화체험관을 세운답니다. 불교 포교시설을 짓는데 국비와 시비 108억원을 투입한답니다. 시민들에게 제대로 설명도 하지 않고 혈세를 투입한다니 말이 됩니까.”
한국불교문화체험관 반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김태식(57) 조직위원장이 손가락으로 불교체험관 부지를 가리키며 분통을 터뜨렸다. 계획대로라면 2019년 이곳엔 지하 3층, 지상 2층 높이의 연면적 5850㎡(약 1770평) 건물이 들어선다. 총공사비는 180억원. 정부와 세종시가 각각 54억원을 지원하며, 대한불교조계종에선 72억원을 부담한다. 단일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조계종 총무원(본부) 연간 예산(827억원)의 8.7%를 차지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 사업이 불교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지 가늠할 수 있다.
정부와 세종시는 ‘다양한 불교전통 문화 체험 및 관람을 통한 삶의 질 향상 및 국내외 관광객 유치’를 목적으로 불교체험관을 건립한다고 주장한다. 세종시 관계자는 “시비가 지원되는 시설은 전시, 홍보, 참선(參禪) 체험시설로 시민들이 문화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포교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불교계 생각은 딴 데 있다. 이곳은 제33·34대 조계종 총무원장이 역점을 뒀던 ‘신도시 핵심 포교전략지’다. 조계종 총무원장은 2014년 “세종시에 조계종 총무원 분소를 설치하겠다”고 공언했다. 불교신문들도 “조계종이 신도시 포교거점 확보를 위해 세종시 내 종교용지 5000평(1만6529㎡)을 사들였다. 세종시 거점도량(거점 포교시설)이 될 것”이라고 홍보했다.
세종시 교계와 시민단체들은 지난 6월 불교체험관이 세워진다는 사실을 처음 접했다. 이달 초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지난 26일 시민대회를 개최했다. 매일 반대집회도 열고 있다. 전용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춘희 세종시장은 대규모 불교 포교 시설을 추진하면서 제대로 된 설명회도, 공청회도 열지 않았다”면서 “공사 중단과 사업취소를 하지 않으면 시장 퇴진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정훈 울산대 법학과 교수는 “종교편향은 특정종교의 포교에 예산과 행정을 편향적으로 지원할 때 발생하는 만큼 불교체험관이 종교편향에 해당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앞서 불교계는 2005년 전통문화 보존과 전승을 목적으로 국비 190억원을 받아 서울 종로구에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을 세웠다. 그러나 현재 조계종 본부 건물로 쓰고 있다.
세종=글·사진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현장] 혈세 108억 들여 세종시 중심에 ‘종교편향 시설’
입력 2017-11-29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