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성상… 자코메티, 영혼이 살아있는 인간 만들려 해”

입력 2017-11-28 19:08 수정 2017-11-29 00:07
조각가이자 화가인 최종태(85) 선생이 먹으로 그린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여러 조각 작품과 자코메티 초상화. 먹이라는 동양적 소재로 자코메티의 작품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해석했다. 그는 2007년 이 그림을 묶어 화집 ‘먹빛의 자코메티’(열화당)를 출간한 바 있다. 열화당 제공
최종태<서울대 명예교수>
젊은 시절 나는 이유 없이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어떤 매력에 깊이 빠졌고 그는 나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 이성과 영성. 그런 양극의 문제로 오래도록 갈등했기 때문이리라. 2007년 출판사 열화당은 프랑스 극작가 장 주네의 책(‘자코메티의 아틀리에’)을 출판하면서 나에게 자코메티의 작품을 먹으로 그려 보라 했다. 이상한 힘에 이끌려 즐겁게 그 일을 했던 걸 나는 기억한다.

세계 조각의 역사에서 가장 작은 조각을 만들 수 있었던 예술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서 제네바에서 파리로 돌아갈 때 성냥갑에 여섯 개의 조각을 넣어 가지고 갔다고 한다. 그는 누구인가.

1901년 스위스의 알프스 산자락 작은 마을에서 화가 조반니 자코메티의 아들로 태어났다. 스물두 살 때 파리로 나가서 조각가 브루델 화실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5년간 조각과 데생을 배웠다. 후에 큐비즘적 조각을 만들었고 초현실주의 운동에 가담했다. 1935년 초현실주의와 결별하고 상상에 기반하는 대신 모델을 두고 하는 작업을 새롭게 시작했다. 그러다가 기억에 의해서 만들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형상이 작아졌다는 것이었다. 기억으로 그리면 눈앞의 사실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며 마침내 면벽하고 10년 고투 끝에 자코메티 특유의 형태, 철사처럼 가늘고 긴 인간의 형상이 탄생한 것이다.

자코메티는 생명체를 만들려고 하였다. 영혼이 살아있는 인간을 만들려고 한 것이었다. 형태의 미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의 형태를 만들려고 한 것이었다. 조형미술의 역사에서 원시의 시대 또는 알타미라 동굴그림에서나 있을, 그리고 아프리카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형상들에게서나 있을 그런 형태를 그는 만들려고 하였다.

20세기 미술의 역사를 살펴보면 자연과 인간이 없어졌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인체를 다루는 조각가들은 있었지만 인간을 만들려고 했던 조각가는 자코메티 한 사람뿐이었다. 형태들은 부동(不動)의 자세를 하고 있다. 동작이 생기면 어떤 순간에 고착된 형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코메티의 부동 속에는 무한한 움직임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가 나중에 ‘걸어가는 사람’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광장에서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생명의 축제현상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의 ‘걸어가는 사람’은 오늘도 쉬지 않고 이 역사의 현장을 걸어가고 있다.

‘보이는 것을 보이는 대로’. 이 말은 조각가 자코메티의 표어처럼 되어 있다. 그러면 어째서 인간의 형상이 그처럼 작아져야만 했을까. 어째서 그처럼 가느다랗게 되어야만 사람처럼 보였단 말인가. 그는 실재하는 인간을 만들려 하는 것인데 작아질수록 사람 같아진다는 것이었다. 실물대의 크기라든가 이목구비를 묘사하는 것으로는 겉만 닮았지 진짜 사람을 닮지 못한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그는 또 피라미드처럼 거대한 인간의 모뉴먼트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할수록 형태가 가늘게 되더라는 것이었다. 가느다랗게 되어야만 커진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사람을 닮은, 사람 조각이 되더라는 것이었다. 실제의 사람처럼 묘사를 하다보면 정작 인간은 저만치 도망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코메티의 인물 조각에는 그리스 조각이 가지는 미(美)를 찾아볼 수가 없다. 심지어 그의 조각에는 눈이 제대로 만들어 있지 못했다. 어찌 보면 가장 비조각적인 것일 수도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예술이란 무엇이며 왜 하는 것인가 하는 원초적인 물음에 관심하게 된다. 서양 중세의 성상조각이라든가 동양의 조각상에서 인간의 영원성에 대한 비전을 읽을 수가 있을 것이다. 캐나다에서 어떤 평론가가 그의 조각을 일러 ‘20세기의 성상(聖像)’이라 했었다.

전쟁의 참화를 겪으면서 이 조각가의 마음에는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 생겼다. 허망함을 넘어 자유와 평화와 사랑으로 가는 끝없는 탐험이 있었다. 사르트르는 그것을 절대의 탐구라 했다. 이 무한대의 공간 속에서 인간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자코메티의 그런 비전. 그것을 형태로 만들고자 그는 도전했다. 그래서 그는 부수고 또 만들고 끝장이 없는 일을 계속했다. 그래서 그는 “내가 만든 여인상은 닷새밖에 살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코메티가 만든 가느다랗고 가냘프고 닷새밖에 살지 못하는 그 가혹하게 추구되어진 가련한 여인상. 그것은 그의 무한한 이상경(理想境)에서 바라보면 항상 미완의 것이었다. 그 불가능에 대한 도전은 예술가에게 있어서는 고된 것이었지만, 지금의 우리 인류에게는 생명의 심벌로 남았다.

자코메티의 출현으로 예술철학에서 동서(東西)의 벽이 허물어졌다. 분석하고 분해하며 인간성을 상실해가고 있는 이 시대에 그는 종합하고 전체를 통솔하며 인간 실존의 정화된 참된 모습을 최고도로 표징하는 형태를 만들었다. 그는 영원을 조각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최종태<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