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초 문재인 대통령이 아세안 순방을 마치고 돌아왔다. 순방길에서 문 대통령은 아세안과의 관계를 주변 4대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교류를 확대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신남방정책을 발표했다. 특히 아세안 국가에 꼭 필요한 분야부터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하며 교통, 에너지, 수자원 관리, 스마트정보통신을 4대 중점 협력 분야로 제시했다. 또한 지난 9월 러시아 방문 때는 다자안보포럼까지 아우르는 신북방정책의 비전을 내놓았다. 이로써 아세안 등 해양세력과의 협력을 겨냥한 신남방정책과 대륙과의 협력을 겨냥한 신북방정책이 새 정부 외교정책의 골간을 이루게 됐다.
물론 둘 다 중요하다. 그러나 신북방정책 안에 넓게는 포함돼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동북아 협력에 대한 부분이 언급되지 않은 건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 한국을 둘러싼 아시아 지역의 정치, 경제 질서에서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의 위상이 중요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근자에 들어서는 협력의 요인과 분위기보다는 갈등과 대립의 요인이 더 부각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국과는 이미 겪고 있는 사드 문제를 포함해 무역 불균형 문제, 방공식별구역 등 영토 문제에 지금은 수면 아래에 있지만 오래전부터의 동북공정 같은 역사 문제 등이 존재한다. 일본과는 무역, 산업 불균형은 물론 전통적인 역사 문제,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등이 산적해 있다.
수많은 갈등 요인에도 불구하고 동북아 협력은 정치적으로는 물론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일본의 기술과 자본, 한국의 경험과 중간기술, 중국의 자원을 결합한다면 한·중·일 3국 경제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다. 일본의 제조업 생산 기술은 세계 수준이고 한국은 단시간 내에 공업화를 달성한 경험이 있으며 중국은 노동집약 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첨단 산업 분야에서도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
한편 우리 기업들 입장에서도 한·중·일 경협 확대는 시장 확대와 기술 개발의 큰 기회가 된다. 특히 동북아 각국의 산업 협력에 있어서도 중소기업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으며, 동북아 협력 확대는 우리 중소기업들에 시장과 산업의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자본, 기술 등의 약점이 있는 반면 그 의사결정 과정의 유연함과 순발력 등으로 인해 새로운 시장 환경 변화에 오히려 쉽게 적응할 수도 있다. 동북아 경협에 따른 새로운 시장 수요 창출과 시장 확대로 사업 기회가 더욱 확대될 것이다.
시장 동향 및 기술 변화에 관한 정보, 자금 등에서 취약한 중소기업들끼리의 협력 필요성과 가능성은 매우 높으며 중소 부품업체들 간 장기 협력기반 구축을 위한 전략적 제휴도 가능할 것이다. 최근까지 부분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관련국 간, 지방자치단체 간의 교류를 이용한 중소기업 간 협력도 가능하다. 이를 통해 지방 중소기업들을 중심으로 산업기술 협력과 지역 특산품의 상품화, 고부가가치화를 모색할 수 있다. 물론 쉽지만은 않다. 산업·기술 협력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정부 차원의 중소기업 지원 정책이 필요하고 중소기업 간의 부품, 소재산업 협력과 이를 위한 국제표준화 시범사업 전개 등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에 비해 자본, 인력, 정보 네트워크 등의 측면에서 열위에 있는 중소기업들의 동북아 협력 관련 활동들에 대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체제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 문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약자에 대한 배려 등 문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도 상통하는 일이다.
혹자는 한·중·일 3국의 정치·경제 구도는 이미 고착화돼 있어서 한국의 운신 폭에 제한이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어차피 그 틀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우리로서는 최대한 지혜를 짜내야 한다. 동북아 협력은 따로 얘기하지 않아도 당연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과연 신북방정책의 구상 하에서 진정한 동북아 협력이 실현될지 지켜볼 일이다.
유진석 동북아미래연구소 소장
[경제시평-유진석] 동북아 협력은 어디에
입력 2017-11-28 1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