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산안 법정 처리시한(12월 2일)이 나흘 앞으로 닥쳤다. 그런데도 여야는 내년 예산 429조원 가운데 172개 항목 129조원에 대한 심사를 마무리하지 못했다고 한다. 여야는 27일 각 당 정책위의장과 원내수석부대표들까지 나서서 막판 협상에 들어갔다. 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심사해 달라며 국회로 넘긴 게 9월인데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있다가 뒤늦게 허둥대는지 한심하다. 적폐청산을 둘러싼 정쟁에만 빠져 정작 가장 중요한 나라 살림살이 심의를 소홀히 한 국회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시간에 쫓겨 예산안 심사가 졸속으로 이뤄져선 안 된다. 정치적 담판으로 밀실 야합이 있어서도 안 될 것이다. 내년 예산안은 조목조목 따져봐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공무원 17만명 증원 관련 예산과 최저임금 급격한 인상에 따른 지원 예산 2조9000억원 등은 여야가 가장 첨예하게 맞서는 부분이다. 아동수당 1조1000억원 등도 쟁점이다. 새로 출범한 문재인정부가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예산으로 뒷받침해주는 것은 국회가 당연히 할 일이다.
문제는 효과도 없이 한 번 시작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혈세를 계속 퍼부어야 하는 사업이 많다는 것이다. 공무원 증원은 내년에는 첫 단계로 중앙공무원 1만2221명 증원을 위한 5349억원이 반영됐지만 국회 예산정책처는 향후 30년간 327조원이 소요된다고 추산했다. 야당은 증원 공무원 수를 절반가량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회복지·안전 등 긴급한 수요는 늘려야겠지만 공약을 실천한다고 공무원 늘리기에 허수가 있어선 곤란하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메우기 위한 세금 지원도 재고해 봐야 한다. 세금으로 민간업자를 직접 지원하는 게 맞는지의 옳고 그름을 떠나 한계에 이른 영세 사업자의 구조조정을 가로막는 것은 물론 한 번 지원하기 시작하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게 더 큰 문제다. 기존 양육수당을 손질하지 않고 중복사업인 아동수당을 소득과 무관하게 지원하는 것도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일본 정부가 3∼5세 무상보육을 추진하려 하자 일본 국민의 절반 이상이 “고소득자는 일정 부분 자기 부담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는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여론조사 결과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올해도 의원들의 ‘쪽지예산’ ‘카톡예산’ 민원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한다. 어처구니가 없다. 정부는 내년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20%가량 감액했다. 그런데 유력 정치인들이 지역구 민원성 예산을 정상적인 심사를 거치지 않고 막판에 끼워넣으면서 예산 편성 원칙을 흔들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쪽지예산을 김영란법 위반으로 결론 내렸다. 불법을 자행하는 의원들의 이름을 공개해서라도 적폐를 없애야 한다.
[사설] 내년 예산안 또 졸속 처리할 건가
입력 2017-11-27 1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