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성 헌재소장 “선례 존중하되 얽매이지 말아야”

입력 2017-11-27 18:38
사진=최현규 기자

이진성(사진) 헌법재판소장은 국회가 임명동의안을 가결한 직후인 지난 주말 헌재 3층 소장실로 집무실을 이사했다. 소장실이 주인을 찾은 건 지난 1월 31일 박한철 전 헌재소장이 퇴임한 뒤 꼭 300일 만이었다. 이 소장은 이 방이 비어 있던 기간만큼만 재직할 가능성이 크다. 2012년 헌법재판관에 임명된 그의 재판관 임기만료일은 298일 후인 내년 9월 20일이다.

하지만 이 소장은 27일 취임식에서 “시간의 길이보다는 시간의 깊이로 기억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사청문회에서 다짐한 “단 하루를 근무하더라도 6년을 근무하는 것처럼 하겠다”는 말을 취임사로 되풀이했다. 그는 “소장 공백 기간 동안 상처 받은 우리의 자긍심을 회복시키는 소장이 되겠다”며 “헌재의 주인은 고단하지만 의연하게 살아가시는 우리 국민”이라고도 했다.

이 소장은 내년 30돌을 맞는 헌재의 역사를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우리가 혹시 ‘그들만의 리그’에 있는 건 아닌지 뒤돌아봐야 한다”고 직원들을 독려했다. 이 소장은 “다른 국가기관들처럼 헌재도 권한을 독점하고 있다”며 “변화를 추구하지 않을 때 큰 위기가 닥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소장은 “선례를 존중하면서도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사청문회에서 헌재가 같은 법 조항에 대한 판단을 합헌에서 위헌으로 바꾸곤 하는 이유를 질문 받고 같은 답변을 했었다. 이 소장은 “선례의 정당성을 의심하는 데서 출발해 헌법적 쟁점을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만 독선적이거나 잘못된 결론을 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소장은 “‘궁즉통’(궁하면 통한다)이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이 말을 ‘진즉통’이라 바꿔 쓰고 있다”며 “진실한 마음으로 진정성 있게 다가간다면 국민께서 정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2012년 재판관 후보로 임명될 때 암송했던 김종삼 시인의 ‘장편2’를 이날 취임식에서 다시 읊었다. 이어 “우리에게는 국민의 손을 따뜻하게 잡고, 눈물을 닦아드릴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글=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