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의심이 많다. 사람에 대한 의심이 많아 경계한다거나, 교회의 어두운 모습을 보고 의심한다는 것이 아니다. 신앙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많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존재하는가’라는 신학적인 것부터 ‘과학과 종교학의 눈부신 발전과 연구 성과에 비추어 기독교 신앙이 합리성과 신비함을 간직할 수 있겠는가’라는 제법 묵직한 학문적 의문, ‘과연 기도는 응답되는 걸까’라는 신앙적 의문, ‘나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맞는가’라는 나 자신에 대한 회의에 이르기까지 숱하게 많다. 그런 의심 잘 날 없다.
그렇지만 나는 목사다. 목사가 뭔가? 복음을 전해 믿음을 갖게 하고, 믿음이 흔들리는 이들을 굳게 세우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아닌가? 그런 내가 나 하나 건사하지 못하니 한심스럽다. 때로는 벼랑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떨어지기 직전이다. 이러다 ‘난 안 믿을래요, 하나님’이 나올 지경이다.
의심이 힘들게 하지만, 나는 의심하기를 멈추지 않을 거다. 왜 그런가? 첫째 성경은 의심하는 사람으로 그득하다. 욥, 예레미야, 하박국, 요나, 시편 저자들이 그렇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선함과 의로움에 대한 의문, 악한 자의 번영과 의인의 고통에 대해 반문이 넘친다. 그 때문에 실족하기 직전이다. 누구나 의심한다. 의심하지 않는 신자는 없다. 하나님을 의심하는 나는, 그리고 당신은 성경의 이야기를 살아내는 중이다.
둘째, 의심은 믿음의 건강성을 재는 하나의 척도다. 종교학 교수인 찰스 킴볼은 저서 ‘종교가 사악해질 때’에서 종교의 타락 여부를 가늠하는 다섯 가지 기준이 있다고 했다.
그 중 하나가 자신이 믿는 바를 의심하는 것이다. 절대자에 대한 신앙이 자기 신념의 절대화로 이어지곤 한다. 자기 절대화가 타인과 다른 나라에 대한 폭력과 전쟁으로 나타난 경우가 흔하다. 사회적 차원뿐만 아니라 개인 영역에서도 의심은 우리 믿음을 강건하게 만든다.
기독교 신앙의 가장 큰 적이 무엇인가? 우상숭배가 아닌가. 내 생각을 하나님 생각으로 착각하는 것은 우상숭배다. 내 생각과 경험, 우리 사회와 문화의 통념을 믿는 건지, 아니면 성경의 하나님과 성경적 기독교를 따르고 있는지 날마다 반성해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믿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나를 날마다 의심하라. 그가 건강한 그리스도인이다.
셋째, 의심이라고 해서 다 같은 의심이 아니다. 의심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믿지 않는 자의 의심, 믿기 위한 의심, 믿기에 갖는 의심이다. 신자들은 세 번째 경우가 많고 두 번째 경우도 종종 본다. 그런 의심은 궁금증 내지 호기심이고 더 알고 싶은 열정이다.
그래서 “왜 이래요”라고 물을 때 “왜 따지느냐”, “넌 왜 그렇게 의심이 많느냐”는 타박을 받거나 주위 눈총이 따갑게 느껴지면 그냥 입을 다물거나 자연스레 신앙과 거리가 멀어진다. 신자들이 의심하는 경우는 논리보다 자기 경험과 관련된다.
예컨대 ‘하나님이 살아 계신가’라며 의심하고 대드는 이가 있다. 그런 물음을 던지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대개 고통과 상실의 경우다. 감싸주고, 받아줘야 할 일이다. 그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고 의심 자체를 도외시하거나 짓누르면 떠나간다. 그런 사연이 없는 경우라도, 그는 답을 듣고자 하는 마음 이상으로 자기 질문을 받아주는 곳을 찾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냥 받아주면 된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면 된다. 신앙을 부정하기 위한 의심이 아니라 신앙을 확정하기 위한 것이다.
의심의 대가는 도마다. 오죽하면 그냥 도마가 아니고 ‘의심 많은 도마’이겠는가. 그도 그럴 것이 요한복음에 기록된 도마는 의심이 참 많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고 하니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데 길을 어찌 알겠느냐”는 그의 말에는 의심을 넘어 냉소가 어려 있다. 부활하신 주를 직접 만지고 봐야만 믿겠다는 그는 신앙에 대한 반감마저 보인다. 열두 사도의 한 사람이 말이다. 의심하던 도마가 요한복음에서 최고의 신앙을 고백했다.
요한복음의 서두는 예수가 하나님이심을 공개적으로 천명한다. 그러나 그 복음서 어디에도 그분을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이가 없다. 단 한 사람, 의심하는 도마의 입에서 나왔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20:28) 의심하는 자는 믿는 자다. 믿는 자는 의심한다. 그러므로 의심하는 나는, 그대는 도마다. 도마처럼 의심하고, 도마처럼 고백하라!
김기현(로고스교회 목사)
[시온의 소리] 의심과 믿음
입력 2017-11-28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