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26일 국민청원에 공식 답변하는 형식으로 낙태죄 폐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했다. 지난 9월 청와대 홈페이지에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피진) 합법화를 부탁드립니다’라는 청원이 오른 지 2개월 만이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정부 차원의 낙태실태 조사를 벌인 뒤 그 결과에 따라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나라는 법으로 낙태를 금지하고 있다. 형법 269조에는 ‘낙태한 여성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적혀 있다. 불법 낙태시술을 한 의료인도 처벌받는다. 그러나 이 조항은 사문화되고 있다. 매년 약 17만명이 태어나지도 못한 채 사라진다. 이 중 불법 낙태가 95%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실태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낙태 문제에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다.
낙태는 어쩔 수 없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결코 용인할 수 없는 행위다. 현행 모자보건법이 임신한 여성 또는 배우자에게 질환이 있는 경우, 성폭행에 의해 임신한 경우, 근친상간의 경우,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경우를 적시해 엄격하게 예외를 인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많은 여성이 미혼모가 될 수 없다는 이유, 아이를 키울 경제적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법 낙태를 선택한다. 이들의 사연에는 무책임한 성적 방종만 담긴 게 아닌 것이 현실이다.
낙태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풀기 위해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을 앞세워 서로를 헐뜯는 소모적인 싸움에서 벗어나야 한다. 낙태를 반대한다고 구시대적인 인물로 낙인찍고 비하하거나, 불법 낙태 시술을 한 의료인을 더 강하게 처벌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 사회는 이미 농경사회 가족 구조에서 벗어나 1∼2인 가구 중심의 다양한 가족 구조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여자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사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사회가 될 때 불법 낙태를 선택하는 여성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출산과 양육을 감당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마련하는 것도 편견을 버리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불법 낙태를 선택한 여성 중에는 스스로 삶을 포기하겠다는 생각에 빠질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건인 경우가 많다. 이들이 마음을 다잡아 아기를 키우고 기를 수 있도록 제도적인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 과거 남아선호 사상 때문에 낙태를 선택하던 시절에는 법으로 금지하고 엄하게 처벌하는 것이 효과적 수단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성의 건강과 권리를 보호하는 관점에서 사회경제적 여건을 먼저 확보하는 방식으로 불법 낙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사설] ‘비혼모’ 편견 바로잡아야 불법 낙태 없앨 수 있다
입력 2017-11-26 1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