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횡단하는 초호화 열차 ‘오리엔트 특급’. 터키 이스탄불에서 영국 런던으로 향하던 열차가 갑작스러운 산사태로 멈춰 선다. 그날 밤,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부유한 사업가 라쳇(조니 뎁)이 객실 안에서 피범벅이 된 채 발견된다. 용의자는 밀폐된 1등석에 타고 있던 승객 13명. 그러나 이들의 알리바이는 모두 완벽하다.
우연히 열차에 탑승한 세계 최고의 명탐정 에르큘 포와로(케네스 브래너)가 수사에 나서지만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고급 손수건, 단추 하나 빠진 승무원 유니폼, 불에 타다 남은 쪽지…. 남겨진 단서들에서 좀처럼 연결고리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중 라쳇이 5년 전 발생한 아동 납치·살해 사건의 범인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추리소설의 여왕’ 영국 애거서 크리스티(1890∼1976)의 작품을 사랑한 이들에게는 낯설지 않을 법한 스토리. 오는 29일 개봉하는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1934년 출간된 크리스티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포와로가 등장하는 소설 가운데 가장 높은 판매고를 올린 이 작품은 그간 여러 차례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된 바 있다.
잉그리드 버그만, 숀 코네리 등이 출연한 1974년판 못지않은 화려한 출연진이 가세했다. 페넬로페 크루즈, 윌렘 대포, 주디 덴치, 미셸 파이퍼, 그리고 조니 뎁. 영국 로열발레단 최연소 수석무용수 출신인 세르게이 폴루닌이 안드레니 백작 역에 캐스팅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포와로 역의 케네스 브래너는 주연과 연출을 동시에 맡았다.
‘사고형 탐정’ 포와로가 용의자들을 관찰하고 면담하며 ‘틈’을 파고드는 과정이 이 영화의 묘미다. 포와로는 상대방의 사소한 말투와 행동을 날카롭게 포착해 기어이 의심의 여지를 찾아낸다. 사건 해결에 필요한 모든 사고가 그의 머릿속에서 이뤄진다.
작품의 이러한 특성은 한편으로 태생적 단점이 되기도 한다. 관객이 능동적으로 추리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단조로운 흐름 속에 주인공이 홀로 모든 실타래를 풀어내는 설정은 21세기 관객의 눈높이를 충족시킬 만한 극적 재미를 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오밀조밀하게 짜인 구조와 그 끝에 감춰진 ‘큰 그림’은 작품에 힘을 싣는다. “옳고 그름에는 분명한 구분이 존재하며 그 중간은 없다”고 믿던 포와로가 범인의 정체를 알게 된 뒤 “정의의 저울도 기울 때가 있으며 그 불균형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인정하는 모습에서 묵직한 여운이 전해진다.
현대적 감각으로 재현된 30년대의 화려한 볼거리와 65㎜ 필름 카메라로 담아낸 열차 밖 황홀한 풍경은 덤. 이미 후속작도 예고됐다. 극 말미에 포와로는 또 다른 사건 의뢰를 받고 이집트로 향한다. 크리스티의 소설 ‘나일강의 죽음’(1937)을 머지않아 스크린에서 만나볼 수 있겠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오리엔트 특급 살인’ 균열을 파고드는 추리의 묘미 [리뷰]
입력 2017-11-27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