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잃고 쫓겨난 이들 위로하며 예배합니다

입력 2017-11-27 00:00
대한성공회 브렌든선교연구소 구균하 신부(왼쪽)가 철거민 이희성씨와 함께 서울 마포구 경의선 공유지의 한 가건물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구 신부가 매주 철거민을 위한 성찬례를 인도하는 가건물 '기린 캐슬'의 모습.
지난해 서울에서 땅값이 가장 많이 오른 곳은 마포구다. 지하철 4개 노선이 교차하는 서울 마포구 공덕역 1번 출구 앞 철도 유휴부지에 철거민 등 집을 잃고 쫓겨난 이들이 모여 가건물을 세우고 터를 이뤘다. 국토교통부 소유 국유지이지만, 이들은 이 자투리땅을 ‘경의선 공유지’라 부른다.

공유지 한편 ‘기린캐슬’이란 이름이 붙은 가건물에서 주일마다 감사성찬례를 여는 구균하 신부를 지난 10일 만났다.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부설 브렌든선교연구소 연구원인 구 신부는 “복음을 삶 안으로 가져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하고 싶다”며 선교적 교회를 꿈꿔왔다.

그의 곁에는 살던 집이 철거당한 뒤 주민등록지를 말소당한 청년 이희성(34)씨가 있었다. 경기도 수원이 고향인 이씨는 2011년 의류 사업의 꿈을 안고 서울 성동구 행당동으로 왔다.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돈을 받으며 보증금 500만원, 월세 37만원 집에 살았다. 2014년 6월 지역 재개발로 강제철거 공고가 내려왔다. 용역 인부들은 철거를 시작했지만 이씨는 주민들과 함께 버텼다. 용역 인부들은 새벽마다 찾아왔다. 윗집 수도관이 깨지면서 그의 꿈이 담긴 샘플과 원단이 젖어 못 쓰게 됐다. 그해 9월엔 집 현관문과 유리창이 깨졌다. 이듬해 4월 이씨는 강제로 집 밖으로 끌려 나왔다.

구 신부는 지난 3월 떡볶이 장사를 하다 쫓겨난 이들을 위한 ‘아현포차 기도회’에 참석하면서 경의선 공유지를 알게 됐다. 이씨와는 8월 기도회 후 포장마차에서 우연히 합석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이씨의 사정을 들으면서 구 신부는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구 신부는 이곳에 이씨처럼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이들을 위한 신앙공동체 ‘숨’을 만들었다. 공유지가 숨쉬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다. ‘나는 나’라는 라틴어 ‘ego sum’에서 영감을 얻었다. 구 신부는 “선교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하실 일을 발견하는 데서 출발한다”며 “목회자는 책상물림이 아니라 현장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숨에 참여할 수 있다. 함께 예배드리고, 칼국수 등으로 식사를 나눈다. 하루는 공유지 앞 고층 아파트 주민이 들러 쫓겨난 사람들과 함께 예배드렸다. 구 신부는 집값을 염려해 공유지를 안 좋게 바라보는 주민들을 예배에 초청해 서로를 이해하도록 도울 방법을 모색 중이다. 구 신부는 “이 공간을 모두에게 의미 있는 광장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최근 숨에 이어 종교적 색채를 뺀 또 다른 모임 ‘숨2’도 만들었다.

그는 자신을 또 다른 공유지라 부른다. 사람을 모으고 연결하는 자신의 역할을 공유지에 빗댄 것이다. 그는 “예수는 사회에서 격리돼 있던 사람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치유했다”며 “신앙인은 나의 것을 위해 다른 사람을 밀어내는 게 아니라 공생하며 공유지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김동우 기자 lov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