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사람의 목숨을 가장 많이 빼앗은 것은 전쟁이 아닌 세균이다. 인류는 1940년대 세균과의 전쟁에서 엄청난 무기인 ‘항생제’를 확보하면서 수많은 감염병 환자의 목숨을 구했다. 이제 세균은 슈퍼세균(슈퍼박테리아)으로 변했다. 마가렛 찬 세계보건기구(WHO) 전 사무총장은 “세계는 다시 단순 감염으로도 사망에 이르는 항생제 도입 이전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슈퍼박테리아 감염을 치료할 수 있는 ‘슈퍼 항생제’ 확보가 시급해졌다.
◇슈퍼박테리아 대응위해 항생제 신약 확보하라=올해 WHO는 슈퍼박테리아와의 전쟁에서 이기려면 새로운 무기를 장착해야 한다고 밝혔다. 날로 진화하는 세균에 새 항생제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 미국은 항생제 내성 위기 해결과 치료제 확보를 위해 2012년부터 ‘항생제 개발 촉진법’을 시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6개의 항생제가 개발돼 미국은 물론 유럽에서 환자에게 사용되고 있다. 영국, 독일 등은 해외에서 개발된 항생제 신약을 자국에 신속히 도입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항생제 신약을 신속하게 승인하고, 항생제 내성 대응과 슈퍼박테리아 감염환자에게 꼭 필요한 필수의약품으로서의 가치를 보험과 처방시스템에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슈퍼박테리아 치료제 국내 환자에게는 그림의 떡?=WHO는 치료제 확보가 시급한 3대 슈퍼박테리아로 카바페넴 내성 녹농균, 카바페넴 내성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균, 카바페넴 내성 및 3세대 세팔로스포린 내성 장내세균을 지목했다. 슈퍼박테리아는 쓸 수 있는 치료제가 제한적이어서 신종 감염병만큼의 파급력이 있다. 항암치료, 골수이식, 중증수술 환자 등 중환자의 생명을 앗아갈 만큼 치명적이다. 하지만 국내 대책에는 ‘새로운 항생제 확보’ 방안이 제외돼 있어 아쉽다는 지적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 간 국내 출시된 새로운 항생제는 3종에 불과하다. 또 ‘국내 항생제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R&D 투자 강화’가 국가 항생제 내성 관리대책에 포함돼 있지만, 항생제 개발 자체가 까다로운 만큼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국민·정부·의사, 무엇을 할지 고민해야=정부도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작년 8월 항생제 내성방지를 위한 5계년 종합계획인 ‘국가 항생제 내성 관리대책(2016-2020)’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항생제 적정 사용’, ‘내성균 확산 방지’, ‘감시체계 강화’, ‘인식개선’, ‘인프라와 R&D 확충(신규 항생제 개발 등)’, ‘국제협력 활성화’ 등의 방안이 포함됐다. 보건복지부 질병정책과 강민규 과장은 “(종합계획에) 담을 수 있는 것은 다 담았다. WHO 권고 내용도 담겼다. 선진국과 비교해 대책이 미흡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항생제 내성 대책은 국민들의 의료이용 관행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 대책이 없어서 문제는 아니다”라며 “(항생제 내성) 문제를 바꾸기 위해 정부와 국민들이 무엇을 해야 하고, 의사들은 어떠한 것을 할지 좀 더 중점적으로 환기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또 새로 개발된 항생제 국내 도입과 관련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관계자는 “슈퍼박테리아이기 때문에 별도 트랙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새로 개발되는 약이 늘고 있어 (정부도) 어떤 방법이 좋을지 고민은 하고 있다. 지난 8월 발표된 보장성강화 대책 중 약가는 선별급여를 도입하는 방안을 통해 등재를 빨리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러한 문제(빠른 약가 등재)를 보완하기 위한 나름의 고민”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일반 신약에 맞춰 급여신청이 이뤄지면 거기에 따라 판단한다. 위험분담제 등의 트랙을 통해 수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가격을 맞추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이재갑 교수는 “항생제는 약제 효과, 항생제 내성문제의 심각성과 다제내성균으로 생명을 위협받고 있는 환자들에 대한 의학적인 요구까지 함께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 새로운 항생제 사용은 항생제 내성 발현을 낮춰 슈퍼박테리아 위협 대응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준엽 쿠키뉴스 기자 oz@kukinews.com
슈퍼박테리아 치료할 ‘슈퍼 항생제’ 시급
입력 2017-11-26 20:16 수정 2017-11-26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