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고문’ 우려 발표 신중
“감식 전까지 안알렸으면… ”
장례 치른 부모 요청도 한몫
보고 체계도 허점 드러내
김영춘 해수부장관 문책
대통령 직접 사과 가능성
세월호 유골 수습사실 은폐는 ‘자의적 결정’과 ‘허술한 보고체계’의 합작품이었다. 현장수습본부(이하 현장본부)는 지난 5월 이미 발견됐던 단원고 학생들 중 한 명의 유골이라고 예단하고, 미수습자 5명의 가족에게 추가 수습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현장본부는 미수습자 5명의 ‘시신 없는 장례식’이 끝난 뒤에야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더욱이 미수습자 가족에게 통보하라는 김 장관의 지시조차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23일 해수부가 발표한 1차 조사결과를 보면, 김현태 부본부장을 비롯한 현장본부 관계자들은 유골 추가 수습사실이 장례를 준비하던 미수습자 가족에게 ‘희망고문’이 될 수 있음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유골은 미수습자 5명의 가족이 장례식을 치르기 전날인 17일 선체 객실 내 반출물을 세척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해수부 관계자는 “발견 사실을 알렸다가 향후 감식결과 미수습자 5명의 것이 아니라고 판명될 경우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고통만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목포신항에서 세월호 유가족들과 오랫동안 함께 지냈던 김 부본부장 의견에 이철조 현장본부장도 동의했다.
이 과정에서 현장본부는 추가로 수습한 유골이 앞서 선체에서 유골이 발견됐던 단원고 학생 허다윤·조은화양 가운데 한 명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예단했다. 세월호를 육지로 인양한 뒤 선체 수색과정에서 발견된 이는 허양과 조양, 일반인 이영숙씨 3명이다. 이씨는 유해가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발견됐다. 허양과 조양은 유해의 일부만 나왔기 때문에 추가로 수습한 유골이 허양이나 조양의 것이라고 넘겨짚은 것이다. 실제로 현장본부는 지난 21일에 허양과 조양의 유가족에게만 유골 추가 수습사실을 알렸다.
과거 허양과 조양의 부모가 김 부본부장에게 했던 요청이 ‘그릇된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지난 9월 장례식을 치른 두 희생자의 부모는 현장본부에 “우리 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유해가 향후 발견되더라도 감식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외부에 알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추가로 발견한 유골이 미수습자 5명 중 하나일 가능성을 아예 배제한 부분은 납득하기 어렵다. 앞서 선체에서 유골이 발견된 게 허양과 조양뿐이라고 해서 추가 발견된 유골을 두 학생의 것으로 단정할 과학적, 논리적 근거는 없다. 확률이 낮더라도 미수습자 5명에게 추가 발견 사실을 통보하는 게 상식적이다. 현장본부의 판단력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보고체계도 치명적인 허점을 드러냈다. 김 장관은 20일 저녁에야 유골 수습사실을 보고 받았다. 이철조 현장본부장은 장관 보고가 늦어진 이유에 대해 “18일 추모식 준비에 정신이 없어 보고시점을 놓쳤다”고 답변했다. 뒤늦은 보고도 해당 유골이 허양이나 조양의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보고를 받은 김 장관은 “설령 그 뼈가 허양과 조양의 것이라도 따라야 할 절차가 있다고 질책하고, 연락을 취하도록 지시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관의 지시는 곧바로 실행되지 않았다. 다음 날인 21일에야 허양과 조양 부모, 선체조사위원회에 통보했다. 김 장관은 “지시를 했으니 이행되고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김 장관도 자신의 지시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챙겨보지 않았던 것이다.
총체적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청와대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세월호 참사 이후 부적절하게 대응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고, 이런 흐름이 문재인정부 출범의 결정적 계기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진상조사 결과에 따라 김 장관의 문책은 물론 문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사과를 할 가능성도 있다.
세종=정현수 기자, 강준구 기자
“세월호 미수습자 아닐 것” 멋대로 판단… 통제장치 없었다
입력 2017-11-23 18:06 수정 2017-11-23 2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