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생활 11년 ‘강제출국’ 공포
죽어서도 ‘불법체류자’ 꼬리표
장례비 등도 지원 못받아
“출입국 단속 피하게 해 주겠다”
동료 말에 따라나섰다 피살
“거하이두엉인얀빠이수수카티(좋은 세상에서 편히 잠드세요).”
지난 5일 숨진 채 발견된 ‘미등록 외국인’ 추티마(29·여)씨 추모제가 23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수능 한파 속 칼바람이 태국어로 된 펼침막을 세차게 흔들었고, 영정사진은 자꾸 바닥에 엎어졌다.
광장은 한산했다. 추티마씨 가족과 동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시민활동가 몇 명만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며 자리를 지켰다. ‘불법체류자’ 꼬리표가 죽음 이후에도 따라붙어 추티마씨 가족들은 범죄피해자가 받아야 할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생계를 책임지는 이가 사망했을 경우 심사를 거쳐 유가족이 생계비, 장례비 등을 지원받기도 하지만 추티마씨는 미등록 외국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심사조차 받지 못했다.
태국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그의 아버지는 딸의 주검을 확인하기 위해 가진 돈을 끌어 모아 겨우 지난 9일 한국행 비행기표만 샀다. 한국 내 체류비와 시신을 태국으로 옮기는 비용은 시민단체와 국내 체류 중인 태국 동포들이 마련해줬다.
추티마씨는 18살에 한국을 찾아 11년을 가족을 위해 일했다. 미등록 외국인 신분으로 생활하는 내내 강제 출국의 공포에 시달렸다. ‘출입국 단속을 피하게 해주겠다’는 말에 동료를 따라나섰다가 봉변을 당한 것도 이 때문이다. 외로움에 떨던 추티마씨는 최근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말도 자주했다고 한다.
추티마씨처럼 미등록 외국인이 범죄에 노출되는 일은 흔하다. 범죄피해를 당해도 강제출국이 두려워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거나 추티마씨 사례처럼 범죄의 빌미로 직접 악용되는 탓이다. 범죄에 노출된 미등록 외국인은 집계된 것만 23만여명에 이른다.
그러나 피해자 지원은 받을 수 없다. 범죄피해자는 외국인도 혜택을 볼 수 있지만 불법체류자는 제외된다. 법무부 유족구조금은 미등록 외국인 가족에게도 지원할 수 있지만 한국인 미등록자도 상대국 정부로부터 같은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한국 시민단체가 관련 법령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지만 오히려 태국 대사관은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국법은 물론 태국법도 미등록 외국인 추티마씨와 가족들을 보호해주지 않았다. 형편이 어려운 추티마씨 가족은 결국 추모집회에 참석하지 못하고 현장 사진만을 부탁해 왔다.
태국 언론도 미등록 외국인에 대한 한국사회의 차별에 주목해 지난 6일부터 꾸준히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한기현 화성이주노동자쉼터 활동가는 “태국 언론인이 ‘이 정도는 한국에서 주목받을 이슈도 아니냐’고 놀라더라”고 말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韓도 泰도 못 지켜준 ‘추티마씨의 죽음’
입력 2017-11-23 2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