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졸인 수능 9시간, 포항 “휴∼”

입력 2017-11-23 17:52 수정 2017-11-23 21:28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23일 경북 포항 이동중 고사장에서 수험생들이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며 고사장을 빠져 나오고 있다. 일주일 전 강한 지진이 발생했던 포항에선 이날 미약한 여진이 있었지만 무사히 수능을 마쳤다. 포항=윤성호 기자

수능 날 만일의 사태 없었다

규모 1.7 등 여진 4차례 발생
진동 미미… 시험 중단 안해

학부모들 “수능 연기 이해해주신
국민들께 감사” 인사 전하기도
수험생들도 “포항 응원 글 감동”


“지진 피해를 본 포항 수험생들을 위해 수능을 1주일 연기했는데도 국민들이 이를 이해해줘 고맙습니다.”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23일 오후 4시50분 경북 포항시 북구 해양과학고 앞. 아들을 기다리고 있던 조철호(52)씨는 “전국에서 포항 수험생들을 걱정해줘 무사히 시험을 마칠 수 있었다”며 국민들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김동목(49)씨 역시 “수능을 1주일 연기한 덕분에 수능을 무사히 마친 것 같다”고 했다.

5교시까지 시험을 치르고 나온 이주형(18·포항중앙고)군도 “전국적으로 다 힘들었지만 포항 수험생들은 특히 더 힘든 시간을 보냈다”며 “(포항 외) 다른 지역에서 도움을 많이 줘 무사히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부 학생은 교문을 나서며 “해방이다”라거나 “끝났다”라고 외쳤다. 마중 나온 학부모들도 활짝 웃는 얼굴로 아이들을 맞이했다.

이날 포항은 수능시험이 종료될 때까지 하루 종일 긴장이 가득했다. 남구 오천고 앞에서 만난 학부모 김은정(45·여)씨는 시동이 꺼진 차 안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김씨는 “쌍둥이 중 둘째가 시험을 보고 있는데 집에 가려니 마음이 놓이지 않아 여기에 있다”며 “지진이 난 뒤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 조금만 더 견디면 된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학교 주변에는 김씨처럼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수험생의 부모와 가족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시험 중에 또 지진이 올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실제 오전 11시35분쯤 포항 북구 북쪽 9㎞ 지점에서 규모 1.7 지진이 발생하는 등 이날 4차례의 미세한 여진이 있었다. 그러나 경북수능상황본부는 수험생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작은 규모의 지진으로 평가하고 시험을 중단하지 않았다. 대다수 학생들은 진동을 느끼지 못했으나 일부 여진을 체감한 수험생들은 “이를 꽉 깨물고 시험을 쳤다”고 말했다. 이규민(18·동지고)군은 “약한 여진을 느끼긴 했지만 시험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며 “SNS 등에서 포항을 응원하는 글을 많이 봤는데 감격스러웠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시험장 앞에서 만난 포항지역 수험생들은 수능시험이 1주일 연기되는 상황을 겪었음에도 의연하고 담담했다. 오전 7시30분쯤 남구 포은중에서 만난 조우현(18·중앙고)군은 각오를 묻자 “지진을 잊고 시험에만 집중할 생각”이라고 짧게 답한 뒤 고사장으로 들어갔다. 이재민(18·세화고)군도 “시험만 생각하고 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애써 ‘지진’이라는 단어조차 떠올리지 않으려는 듯했다. 비슷한 시각 남구 이동중에서는 수능시험을 위해 울릉도에서 온 여고생 20여명이 해병대가 제공한 차량을 타고 학교에 도착했다. 여고생들 역시 담담한 표정으로 고사장으로 들어갔다.

반면 학부모들은 수험생보다 더 조바심을 냈다. 포은중에 아들을 데려다줬다는 정경은(48·여)씨는 “아들도 떨리겠지만 나도 떨린다”며 “지진 때문에 마음고생한 아들을 생각하면 안쓰럽다”고 말했다.

포항=최일영 조원일 기자 mc102@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