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한국교회의 세 가지 근심

입력 2017-11-24 00:01

명성교회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개혁정신에 제대로 찬물을 끼얹고 명성을 드높였다. 역설적 해석이지만 한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과학적 검증을 거친 결론은 아니나 그동안 한국교회에는 세 가지 근심거리가 있었다. 첫째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목사된 것, 둘째 그 사람이 목회에 성공한 것, 셋째 세속적으로 성공하면 의례히 교계의 원로(元老)로 행세하는 것이다. 그 대과거와 과거, 현재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 자기를 성찰할 줄 모르는 처신의 부박함이다. 필자가 알기로 기독교사의 빛을 남기고 스승으로 기념되는 선진들이 경솔하고 천박했다는 얘긴 들어보지 못했다. 비루와 고귀. 그 모습이 세속의 혼란스러운 홍진(紅塵)과 진리(眞理)의 명백함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예언이 아닐까. 신앙이란, 의식 무의식의 탐심과 허위에 대한 단호한 부정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전래 100년 동안 이 땅에 배양된 기독교적 고귀함이란 무엇일까. 가령 미국 식민지 시대 청교도 신학자이자 목회자였던 조너선 에드워즈(1703∼1758)를 논할 때 ‘그는 현대 미국의 사상과 감정을 완성했다’고 표현한다. 미국 사회 정체성의 영감과 윤리의 기반을 닦았다는 헌사다. 한국 기독교 특히 교계의 주류를 이룬 보수주의 신앙계에 있어 세계적으로 성공한 지도자들은 많다. 그러나 보편적인 한국사회와 정신사를 고양시킨 인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에겐 검든 희든 고양이가 쥐만 잘 잡으면 되듯 목사는 목회에 성공하기만 하면 된다는 오직 하나의 신학이 있다. 일단 무대의 규모가 커지면 생성되는 영성과 카리스마가 신학의 빈곤을 가려준다. 대형교회 예배실황을 많이는 모르겠다. 그러나 군중심리에서 발산되는 감정의 힘과 영적 고양의 분위기의 위험성은 알고 있다. 숭배하거나 폄훼하려는 게 아니라 그것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느냐를 아쉬워하는 것이다. 에드워즈의 말대로 정서는 신앙과는 무관한 것이고, 전자가 후자를 삼킬 때 그 역량은 자기증대의 콤플렉스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부자세습의 과정을 보면서 떠오르는 건 이 말씀이다.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이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종이 임금된 것과 미련한 자가 음식으로 배부른 것과 미움 받는 여자가 시집 간 것과 여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니라.(잠 30:21∼3)

세습의 부당함에 대해서는 보탤 말이 없다. 가장 중대한 문제는 지금이 그럴 때냐는 것이다. 목사는 세 가지 준비를 해야 한다고 배웠다. 첫째 설교 준비, 둘째 짐 쌀 준비, 셋째 죽을 준비다. 설교 때문에 짐을 싸고 죽을 준비가 됐는가. 나는 그럴 준비를 갖췄다는 허영이 아니라 도무지 왜 목사를 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명성교회에는 김삼환 김하나 목사 말고도 목사가 수십은 더 넘는다. 목사가 수십이 넘으면 전도사는 또 얼마일까. 그런데 때와 시기를 분별하고 기독교인의 사상과 감정을 일깨우는 설교를 하는 목사도 없고 그 일로 짐 싸는 전도사도 없다. 이것이 세상이 교회를 보고 탄식하는 ‘자정능력이 없다’는 말의 현실일 터다. 만일 명성교회의 목사들이 부자세습에 반대해 일괄사퇴를 선언한다면. 전도사들이 명성교회와 같은 세습교회에서는 일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면. 적어도 세상이 한국교회에 자정능력이 있고 개혁정신이 살아있는 줄은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 교회를 사유화한 아버지와 아들만 탓할 일이 아니다. 같은 이유로 두 사람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와 한국교회, 공교회성을 배반한 행위가 가볍다 할 수 없다. 그들이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이 견딜 수 없게 하는 서넛이 아니면, 그들이 곧 종이 임금된 것이 아니면, 미련한 자가 음식으로 배부른 것이 아니면, 미움 받는 여자가 시집 간 것이 아니면, 여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 아니면, 성서는 읽으나마나한 고문서(古文書)에 불과한 것이다.

두 분은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돌이키길 바란다. 교회의 공교회성을 잊지 마시라. 기독교는 명성교회보다 영원하고 한국교회는 명성교회보다 더 흥해야 한다. 김하나 목사의 결단을 촉구한다. 아버지의 빈 지게를 지고 머슴의 퍼포먼스를 이어갈 텐가. 이제부터 당신의 모든 설교를 세습에 대한 궁색한 변명에 바칠 것인가. 예언하는 자의 영은 예언하는 자의 제재를 받는다. 당신의 하는 일을 속히 하시라(요 13:27).

천정근 (자유인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