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의 꽃’ 고법 부장판사 승진, 내년부터 사라진다

입력 2017-11-23 05:05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달 25일 취임 기자간담회를 갖고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 대법원장의 사법개혁 방침에 따라 법원행정처는 22일 고법 부장 승진 제도를 폐지한다고 밝혔다. 국민일보DB

‘김명수 대법원’ 획기적 인사개혁안 내놔


사법연수원 25기부터 적용
기수 내려갈수록 승진 줄어
법관회의 등 개선요구 봇물
법관 이원화는 계속 추진
인사주기도 장기화 방침


‘법관의 꽃’으로 불려온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제도가 폐지된다. 그간 사법부 관료화, 법관 독립성 침해의 원인으로 지목돼 온 법관사회의 공고한 피라미드식 승진 구조가 완전히 바뀐다는 의미다. 법관들의 인사이동 폭이 줄어들면 심리 시간이 짧아지고 사건의 깊은 이해가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재판 당사자들에게는 긍정적 효과도 예상된다.

김소영 법원행정처장은 22일 법원 내부 전산망 ‘코트넷’에 “사법연수원 25기 이하 법관은 2018년 정기인사부터 종래와 같은 방식의 고법 부장 보임 심사를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공지했다. 24기 이상 법관은 종전처럼 보임할 계획이지만, 대상과 범위가 구체적으로 결정되진 않았다. 김 처장은 “법관인사 제도는 고정된 것이 아니고 법관의 독립과 좋은 재판을 구현하는 밑바탕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개선해 나가야 하는 대상”이라고 덧붙였다.

예정에 없이 이뤄진 이날 공지는 법관사회에서 파장이 컸다. 2심 재판을 주도하고 행정부 직급상 차관급의 예우를 받는 고법 부장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소수 법관에게만 주어지던 자리였다. 전용차량이 제공되고 근무평정에서 제외되는 특전 때문에 법관사회에서는 오래도록 선망의 대상이었다. ‘고법 부장을 시켜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가 가장 기분 좋았다던 고위 법관도 있다.

하지만 고법 부장 보임 비율이 해마다 낮아지고 10명 중 1명만 고법 부장에 이르는 기수까지 등장하면서 제도 개선 요구가 커져왔다.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를 계기로 출범한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승진을 위해 눈치를 보게 하고 법관사회를 관료화하는 폐단”이라며 지난 9월 고법 부장 제도를 없앨 것을 공식 촉구했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측은 이날 “대표회의에서 요구해온 취지가 내년 2월 인사부터 받아들여진다는 의미로 이해한다”고 밝혔다.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요구 이전부터 고법 부장 제도는 점진적 폐지가 예정돼 있었다. 고법과 지법 인사를 분리, 지법 부장이 고법 부장으로 승진하는 것을 자연스레 없애겠다는 ‘법관 인사 이원화’는 2010년부터 도입됐던 것이다. 하지만 국정감사 때마다 이 제도가 실질적으로 진전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2015년에는 이원화 재검토 논쟁이 법원 내부에서 발생하며 혼란이 가중됐다.

이런 상황에서 공언된 고법 부장 제도의 폐지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사법개혁 의지를 보여준다는 해석이 크다. 그는 인사청문회 때부터 고법 부장 제도의 폐지는 법관의 독립을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김 처장은 이날 공지에서 법관들의 인사 주기를 장기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연수원이나 행정처 등 비재판 보직의 인사 투명성을 개선하겠다고도 공지했다. 법관이 한곳에서 오래 근무하는 관행이 정착될 경우 대국민 서비스의 개선도 기대된다.

법원 관계자는 “법관들의 잦은 인사이동은 재판 당사자들에게도 비용 증가 등 불편을 초래했다”며 “앞으로는 한 사건을 깊이 있게 볼 수 있고, 재판 소요 시간도 짧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글=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사진=서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