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순병, 죽을 힘 다해 南으로 南으로… 긴박했던 45분 재구성
입력 2017-11-23 05:02
지프 몰고 ‘72시간 다리’쪽으로
헤드라이트 켠 채 내달리자
北 병사들 다급히 뛰쳐나와
귀순병사 MDL 넘자 우왕좌왕
캐럴 대변인 “구조 장면
北 초소에서도 볼 수 있어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지난 13일 귀순한 북한 병사는 생사의 기로에 섰던 45분을 기적적으로 넘겼다. 귀순 병사는 자신의 바로 뒤 몇 m 거리에서 조준사격하는 북한군의 추격을 받으며 군사분계선(MDL)을 넘었다.
유엔군사령부가 22일 공개한 당시 CCTV 및 열상감시장비(TOD) 영상에 따르면 귀순 병사는 13일 오후 3시11분 북측에서 지프를 몰고 ‘72시간다리’ 쪽으로 헤드라이트를 켠 채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북한 지역 논밭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타고 남측으로 향했다. 이는 우리 군이 북한군의 이상 징후를 처음 파악했다고 밝힌 시간보다 3분 앞선 때다. 유엔사 관계자는 “이 도로에선 북한 차량이 이동하는 장면이 더러 포착되긴 했지만 헤드라이트를 켜고 이 정도로 속력을 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북측 건물에선 북한군 병사들이 다급하게 뛰어나오는 모습도 포착됐다. 북한군 2명은 인근 초소에서 뛰어왔으며 다른 2명은 판문각 계단에서 뛰어내려왔다. 귀순 병사는 빠르게 다리를 건넌 뒤 JSA 시작 지점인 김일성비 부근에서 우회전을 했다. 채드 캐럴 유엔사 대변인은 “군사분계선을 넘어 대한민국으로 넘어오기 위한 의도를 분명히 갖고 급하게 우회전한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프는 배수로 턱에 걸려 움직이지 못했다. 귀순 병사는 한두 차례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차량을 빼내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귀순 병사는 지프에서 내려 남측으로 내달렸다. 북한군 추격조 4명이 그를 뒤따르며 조준사격을 가했다. 귀순 병사가 잠시라도 차 안에서 머뭇거렸다면 추격조에게 붙잡힐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AK-47 소총을 든 북한군은 순식간에 넘어지듯 엎드려쏴 자세를 취한 뒤 총격을 가했으며 다른 3명은 앉거나 선 채 권총 등으로 조준사격을 했다. 군 관계자는 “40발 이상을 쏜 것으로 파악됐다”며 “귀순 병사가 5∼6발만 맞은 것은 기적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귀순 병사는 오후 3시15분 MDL을 넘은 뒤로도 필사적으로 남측으로 내달렸다. 엎드려쏴 자세로 조준사격을 했던 북한군이 일어서서 그를 뒤따라가다 MDL을 몇 걸음 넘어섰다. 멈칫한 북한군은 황급히 되돌아가며 잠시 우왕좌왕했다. 주변에 있던 추격조와 말을 주고받는 듯한 모습도 포착됐다. 귀순 병사는 이미 남측으로 넘어온 상황이었다. 북한 신속대기조로 추정되는 10여명은 소총 등으로 중무장한 채 김일성비 앞에 집결했다. 귀순 병사가 MDL을 넘은 지 2분 후였다. 이때 JSA 경비대대 소속 우리 군과 유엔군은 남측에서 대비태세를 강화했다.
열상감시장비에 찍힌 흑백 영상은 JSA 경비대대 소속 대대장과 부사관들의 구조 작전 상황을 담고 있다. 오후 3시31분쯤 열상감시장비를 통해 남측 자유의 집 벽 아래 낙엽 더미에 쓰러져 있던 귀순 병사가 발견됐다. 4분 후인 오후 3시35분쯤 2개 소대가 전투배치된 후 구조 작전이 시작됐다. 오후 3시55분 JSA 경비대대 소속 중사 2명이 포복으로 쓰러져 있던 귀순 병사에게 접근했으며 뒤쪽에서 대대장이 포복 자세로 엄호하며 작전을 지휘했다. 자유의 집 남측으로 옮겨진 귀순 병사는 차량으로 후송됐다. 귀순 병사 신병은 오후 3시56분 확보됐다. 캐럴 대변인은 구조 작전을 설명하며 “북한 쪽 초소에서도 (구조 장면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